아이스슬레지하키 공격수 정승환, 세계선수권서 5전 우승 이끌어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새하얀 전장에 독수리가 날아들었다. 까만 퍽을 잽싸게 낚아채더니 썰매들을 요리조리 피해 힘껏 블레이드 스틱을 내리쳤다. 흔들리는 그물.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세계에 처음 전파한 스웨덴도 놀랐다. "코리아 넘버 포틴(14번) 원더풀." 정승환(29ㆍ강원도청). 이제는 '빙판의 독수리', '빙판의 메시'로 더 많이 불린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아이스슬레지하키 공격수다.
아이스슬레지하키는 절단이나 척수 장애로 하반신 거동이 어려운 선수들이 썰매를 타고 벌이는 아이스하키다. 한국은 스웨덴 외스테르순드에서 23일(한국시간) 끝난 아이스슬레지하키 세계선수권대회 B풀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 A풀에 나설 자격을 얻어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에 자력 진출하겠다는 목표(5위 이상)에 다가갔다.
정승환은 열세 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다. 도움(9개), 공격포인트(22점)에서도 1위에 올라 공격 부문 3관왕에 올랐다. 공격포인트 2위 페르 카스페리(22ㆍ스웨덴ㆍ6골6도움)와 격차는 10점.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주저 없이 정승환을 대회 최우수 공격수로 선정했다.
전정국(40) 대표팀 코치는 "체구가 작지만 빠르다. 선수들 사이 '로켓맨'으로 불릴 정도"라며 "몸싸움에서 밀려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오른손잡이인 정승환은 오른다리가 없다. 링크 밖에선 장애지만 안에서는 최상의 조건이다. 스틱이 발에 걸리지 않아 막힘없이 다양한 공격을 할 수 있다. 상대에겐 당연히 경계대상 1호. 전 코치는 "수비가 세 명씩 달라붙는다"고 했다. 그래서 늘 부상 위험을 안고 뛴다.
정승환은 "지난해 소치동계패럴림픽 미국과 경기에서 수비수에게 옆구리를 얻어맞은 것이 가장 안타깝다. 갈비뼈가 부러져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개막전에서 대회 준우승 팀 러시아를 3-2로 이겼지만 7위를 했다. 정승환은 이탈리아에 1-2로 져 4강 진출이 좌절됐을 때 한동안 링크를 떠나지 못했다. "'다시 4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나' 걱정했는데 시간이 참 빠르네요."
재도약의 첫 발을 기분 좋게 내딛은 그는 평창동계패럴림픽 준비를 철저히 한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불리고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동료를 돕는다. "엔트리 열일곱 명을 채우기도 힘든 형편이라서 서로 많이 뛰며 도와야 해요. 이번 대회에서 조직력이 나아졌다지만 더 발전시켜야죠. 평창에서 꼭 메달을 딸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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