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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아깝더라도 버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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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아깝더라도 버릴 것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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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를 버렸다. 주부로서 죄의식을 느낄 때가 있는데 사다 놓은 재료를 깜박 잊고 있다가 유통기한이 넘어 결국 냉장고에서 퇴출시킬 때가 그렇다. 다행히 두부는 유통기한이 약간 넘어도 양념을 세게 해서 지지거나 다른 요리에 섞어 넣으면 별 티가 나지 않아 가끔씩 구제해줄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사온 두부는 달랐다. 유통기한이 딱 하루 지났길래 후다닥 지져 저녁상에 내놓았는데 남편이 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아깝지만 몽땅 버렸다.


내가 속한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는 유독 '전과자(轉科者)'들이 많다. 교수들 대부분이 학부 때 이공계 전공이었다가 대학원에서 학과를 옮겼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도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환경공학 등 온갖 전공 출신이다.

나도 전과자인데 학부 4학년 때 전과를 결심하고 인문사회과학 쪽 대학원을 기웃거리던 중 철학, 경제학, 정치학 세 군데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결국 정치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당시 느낌에는 아무래도 철학이랑 경제학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빼기 어려울 것 같고 정치학은 왠지 아무나 다 하는 것 같고 혹 가다 이 길이 아닌가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는 분야처럼 다가왔다. 물론 이런 억측은 첫 학기에 깨졌지만.


비단 부엌살림이나 전공 선택만이 아니라 나라 살림에서도 마찬가지 후회가 종종 발생한다. 경제학에서 '매몰비용(sunk cost)'의 함정이란 이미 지출해 되돌릴 수 없는 비용으로 그동안 들인 시간이나 노력이 아까워 승산 없는 사업에서 발을 못 빼는 경우를 말한다. 2015년도 우리나라 정부 예산은 375조원인데 이 중에는 어쩔 수 없이 그냥 가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이 꽤 있음직하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처럼 사업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상당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욱 꼼꼼히 따져봐야 할 테다.

실례로 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중도하차한 연구개발사업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초전도슈퍼입자가속기( SSCㆍ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사업이다. 1987년 미 의회는 총 83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SSC 건설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그후 5년 동안 매해 예산 심사 때마다 살아남았다.


그런데 1993년 미 의회는 이미 20억달러가 지출된 SSC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표결했다. 당연히 SSC 프로젝트에 관련된 과학자들은 이 입자가속기가 새로운 물리학이론의 검증과 관련 첨단기술 융합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군사적 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에의 막대한 투자에 대한 회의가 제기된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물리학시대의 종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도 하차했다고 해서 그 사업이 원래 가치가 없거나 황당했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처음 시작할 때는 (두부를 살 때도 그렇고 학부 전공을 정할 때도 그렇고)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어 선택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처음에 합리적 또는 최적이라고 판단했던 결정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게 되는 소위 '시간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 현상이다. 최초의 선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 과감히 돌아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과 돈과 열정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개인적 선택의 경우는 과감히 돌아서는 것이 어렵지만 집단적 선택의 경우는 과감히 돌아서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있다. 과연 최초의 선택이 더 이상 유효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이다. 여기에 공감과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환경과 조건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최적의 선택이 아닌 경로에서 여전히 미적대고 있을 것이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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