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최근 언론을 보면 가히 '세금 정치'라고도 불릴 만큼 세금에 대한 얘기가 분분하다. 새로 개편된 여당 지도부조차 '증세 없는 복지정책의 무리함'을 지적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야당 지도자는 정부가 증세를 하고 있음에도 증세가 없다고 하며,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듯 증세 부담이 서민층과 근로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들어 '이중 배신'이라고 했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은 혼란스럽다. 정치인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 대부분은 세금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증세를 하면 표가 떨어지고 복지를 하면 표가 모여든다는 정도를 감각적으로 아는 '세금 정치꾼'이 아닐까 한다. 몇몇 소수의 양심이 있는 정치인 정도가 이렇게 복지를 확대하다가는 국가 재정난이 심화되어 나중에 그리스 꼴 나는 것 아닌지 걱정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선거 때 보면 증세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정치인의 한계일 것이다.
이와 같은 혼돈의 상태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학문의 몫이다. 세금은 세무학의 영역이다. 이는 경제학, 재정학, 회계학, 법학, 국제법이 어우러진 복합 학문이다. 세금은 어떻게 거두어야 하나(세입예산)? 헌법재판소의 얘기를 빌리자면 세금은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징수하되 그 내용은 조세가 공평(소득이 많은 자는 상대적으로 세금부담이 많도록)하게 부담되도록 짜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89헌마38ㆍ1989.7.21 결정).
그러나 통계청의 2014년 가계동향 통계를 보면 중산층의 세금 증가율(전년 대비 18.8%)이 고소득층(3%)의 6배를 넘는다. 현 정부의 부자 증세정책 회피가 가져온 결과라고 본다. 이는 조세의 공평부담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많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은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세출예산)? 이 분야는 세무학이 아니라 재정학에서 다루는 문제다. 그러면 세입(세무학)과 세출(재정학)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균형(세입예산=세출예산)이 정답이다.
앞서 언급한 정치권의 얘기는 세금을 어떻게 공평하게 거둘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에 예상보다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니 복지를 줄일 것인가(선택적 복지) 아니면 복지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세금을 더 거둘 것인가의 기초적인 논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복지를 줄이자니 표가 날아가고 증세를 하자니 역시 표가 모이지 않는다. 바둑으로 치면 양자충(兩自充)에 걸림 셈이다. 정치권 모두, 특히 대통령과 정부가 그렇다.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국가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4년만 해도 세입결손이 1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수정예산 편성이 너무 잦다. 세입이 예상보다 덜 걷힐 것 같으니 국채를 발행하여 재원을 마련하고자 함이다. 이게 공무원 중 가장 우수하다는 자들이 모인 재정 관료의 작품이라니 이해하기 어렵다. 하기야 그들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재정 적자는 누가 갚아야 하나. 대통령인가, 국회의원인가, 이들을 찍은 유권자인가. 복지혜택을 받은 서민인가. 다 아니다.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세금을 더 거두면 경제활성화를 저해한다는 편협한 논리는 버려야 한다. 세금을 거둬 불에 태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정부가 복지로, 건설로 재투자한다. 투자 주체만 기업에서 정부로 바뀔 따름이다. 지금 어느 돈 많은 기업에서 투자를 늘리는가?
세금 정치꾼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상위 1%가 소득에 비례하는 세금 납부를 피하지 못하도록 세금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증세정책을 반면교사로 살펴보길 바란다. 거기에 미국의 살길이 있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세금 정치꾼 노릇은 이쯤해서 끝내고 세무학 및 재정학의 기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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