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최상 농구 환경 위해 구단에 끊임없이 의견제기·관철시켜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명장이요? 꼴찌도 경험해봤어요."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52ㆍ사진)은 손사래를 치기 바빴다. 그래도 특별한 날인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모비스는 15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홈경기에서 서울 SK를 70-60으로 이겼다. 유 감독의 개인통산 500번째 승리(384패ㆍ승률 56.6%). 다승 부문 2위의 전창진 부산 kt 감독(52ㆍ423승302패ㆍ승률 58.3%)을 따돌리고 프로농구 사령탑 최초로 고지를 밟았다.
"감독을 오랫동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기록이에요. 나는 운이 좋은 셈이죠." 그러나 '개인통산 500승'이라는 금자탑은 60년 전통의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영예를 누린 지도자가 열다섯 명에 불과하다.
모비스의 주포 리카르도 라틀리프(26)는 "농구를 잘할 수 있도록 코트 밖까지 신경을 써주는 감독"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시즌 직후 술잔을 기울이며 재계약에 대한 믿음을 심어줬다. 그때 주문한 미들슛을 잘 쏘려고 미국에서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유 감독은 최상의 농구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구단 프런트와 자주 소통하며 선수단에 필요한 점을 설파한다. 그 덕에 선수들은 울산동천체육관과 용인의 숙소를 항상 비행기로 오고 간다. D리그의 선수들도 마찬가지. 고양체육관에서 경기를 마치면 곧장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울산으로 향한다. 1군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관찰해야 작전 이해도가 향상되고 동료애가 끈끈해진다는 유 감독의 믿음이 작용했다.
"구단에 부탁하기가 왜 어렵지 않겠어요. 감독이 왕도 아닌데. 그래도 선수단의 입장을 대변해줘야 하니까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죠. 지금까지는 그게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늘 코치들과 공유한다. 그 덕에 모비스는 유 감독이 자리를 비워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올 시즌이 대표적이다. 인천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6개월 이상을 빠졌지만 16일 현재 리그 선두(35승12패)다.
안정된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1999-2000시즌에 맡은 인천 SK가 꼴찌를 했죠. 시즌 뒤 트레이드에도 애를 먹었고요. 계속 쓴맛을 보니까 스스로에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남의 것을 동경하고 새로운 것에 집착하게 됐다. 그 변화가 500승까지 온 힘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선두 경쟁이 한창인 지금도 그는 다음 시즌을 고민한다. 외국인선수 제도의 변화로 라틀리프와 재계약이 어려워지고 문태영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점 등을 우려한다. 양동근(34)과 함지훈(31)에게 쏠린 부담도 덜어주고 싶어 한다. "우리 팀에 어울리는 퍼즐을 계속 찾아봐야죠.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런 시간 투자야말로 가장 큰 경쟁력이에요. 오늘의 영광은 이제 잊으렵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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