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세를 걷기 위한 정부의 정지 작업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저출산ㆍ고령화위원회 회의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연말정산 소동이 증세 논란으로 번지는 형국에서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정부의 장기적인 어젠다마저도 일부 네티즌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엇나간 네티즌은 "대통령도 결혼 안 했는데…"라며 어깃장을 놓기까지 했다. 정부의 정책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불신은 연말정산 소동과 건강보험료 개편 논의 과정에서 보듯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넘어서, 세대와 계층을 넘어서 저출산과 고령화는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와 앞으로 이 땅을 물려줄 미래 세대 모두를 위해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대비해야 하는 문제다.
실상을 숫자로 놓고 보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주민등록 인구통계상 지난해 우리나라의 세대당 인구는 2.48명까지 떨어졌다. 1인가구의 증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없는 집이 더 많아지고 있음은 자명하다. 실제 여자 1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숫자인 합계출산율은 80년대 1.5명 선으로 줄더니 2005년 1.08명으로 최저를 찍고 2013년에는 1.19명이었다.
저출산 현실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 같은 추세가 쉽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은 지난해 혼인건수가 사상 최저 수준이 될 것이라 예고했다. 이달 말 나온다는 이 통계가 적중할 경우 올해 출산율은 더 떨어질 게 뻔하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올해 출생아 수는 사상 최저인 42만명 선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망에 따라 인구 정점의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절대 인구의 감소는 오래된 미래다. 불과 20년 전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인구는 2021년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일까.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거나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던 산아제한 표어는 이즈음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표어는 이미 '너와 내가 미룬 출산, 추락하는 한국 경제, 등골 휘는 우리 후손'이라며 미래를 예상하고 '허전한 한 자녀, 흐뭇한 두 자녀, 든든한 세 자녀'라고 다둥이를 장려했다.
과거의 전망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이처럼 생산인구가 급감한다는 '인구절벽'을 수십 년 전에 미리 예견하고도 무방비상태로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가 이제라도 향후 5년을 인구정책의 골든타임으로 선언하고 대안 찾기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호들갑스럽긴 하지만 주무부처인 복지부 외에 기획재정부, 여성가족부는 물론이고 법무부에 국방부까지 범부처에서 소관 과제를 갖고 챙긴다고 하니 짐짓 기대가 크다.
그러나 뒤늦게 내놓은 저출산의 원인이 만혼(晩婚)이고 그 처방이 초혼(初婚) 연령 낮추기라니 허를 찔린 느낌이다. 끼니때 놓치면 배고프니 배곯지 않으려면 제때 먹으라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퍽퍽한 삶이다. 국민들은 먹거리를 찾느라 제때 밥을 못 먹는 것인데 한가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땅에는 행복한 세대가 있기나 한 걸까.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간 사이 돌봐준다는 어린이집에서는 폭행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대학 입시라는 긴 터널을 내리 달려야 하고,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바늘구멍만 한 취업문 때문에 좌절한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내 손으로 신혼집 마련도 힘들고 이제 좀 안정되는가 싶으면 명예퇴직이다.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거치고 은퇴한 뒤의 삶은 더 고단하다고들 한다.
오늘의 퍽퍽한 삶이 후세 없는 나라를 예고하고 있음이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그렇게 주창했던 '국민 행복시대'가 그저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진정 펼쳐져야 하는 이유다.
김동선 기획취재팀장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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