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문제를 놓고 보건복지부가 갈팡질팡하며 무소신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장관이 개편안 발표 예정일 하루 전에 '개편 추진 중단'을 선언한 지 엿새 만인 어제 담당 국장은 '개편 재추진 준비'를 하겠다고 장관의 말을 뒤집었다. 그런데 언론이 이를 '재추진 선회'로 보도하자 대변인실은 '연내 재추진은 결정한 바 없다'는 내용의 '보도해명자료'를 냈다. 그러는 도중에 '저소득층만 건보료 경감' 방안을 내밀기도 했지만 이것을 관철할 생각도 접은 것 같다.
개편 후 건보료 부담이 증가할 최상위 고소득층 45여만명의 불만에 신경을 너무 쓴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혼선이 거듭되다 보니 이제는 정부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일이 꼬여버렸다. 오늘 오전까지도 복지부의 공식 입장은 '최신 자료로 좀 더 세밀하게 시뮬레이션'해보고 '앞으로 당정협의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처리'한다는 것이다. 교묘한 말이지만 그동안의 상황에 비추어 '추진 중단과 재추진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하면서 눈치를 보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개편 추진 중단' 선언에 대해 비난여론이 들끓고 여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이의제기를 하자 납작 엎드린 것이다. 주무부서로서 정책적 판단이나 소신이 보이지 않은 태도다.
복지부는 당정협의에 앞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에서 작성한 개편안부터 공개하고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복지부가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한 이 기획단은 지난 1년 반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소득 중심의 새로운 건보료 부과체계안을 만들었다. 재산과 소득 이중 기준의 현행 부과체계는 고소득자 무임승차,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과다부담 등 역진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획단은 개편안에서 바로 이러한 역진성을 해소하면서 건보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 그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
그런 다음에 정부가 국민과 소통해가면서 가장 바람직한 건보료 개편방안을 찾아 정부안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적당히 손 털고 국회에 떠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안은 저소득층 부담 경감의 차원을 넘어 부과체계 전체의 형평성을 높이는 종합적인 처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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