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금융협회장, 금융당국, 벤처업계 대표 등 108명이 어제 한자리에 모여 7시간 동안 난상토론했다. 주제는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로 금융의 발전 방안을 찾는 자리였다. 신년 업무보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하자 금융당국이 서둘러 기획한 행사이지만 나름 진지한 토론이 이뤄졌다. 금융협회장과 CEO들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여기 있는 CEO 중 망할 분이 많다"는 말도 나왔다. 그만큼 한국 금융이 처한 현실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금융위ㆍ금감원부터, 저부터 먼저 변화하겠다"며 금융권의 변화와 개혁을 촉구했다. 그러나 토론회장에서 터져나온 이야기를 보면 금융당국의 변화 의지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관제(官製) 토론회에서 관을 탓하는 쓴소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신사업 추진 시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떠넘기는 '업무 핑퐁'을 하는 바람에 인허가 처리가 늦어진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감독 행태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중복 검사가 여전하고, 문서가 아닌 구두 지시 등 불투명한 현장지도를 남발한다는 것이다. 금융협회장과 CEO들은 당국의 시시콜콜한 규제와 제재, 일관성 없는 정책이 금융권의 보신주의 문화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모처럼의 토론회가 보여주기 행사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당국은 토론회에서 지적된 사항을 뼈아프게 새겨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금융사에 변하라고 주문하기 이전에 당국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시장과 소통하며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중국ㆍ미국의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의 도전에서 보듯 정보기술(IT)과 금융의 융합이 대세인 상황에서 과거 산업화 시대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직된 분리 프레임을 고집해선 세계적 흐름에 뒤처질 것이다. 낡은 금융관행을 혁신하고 규제개혁을 빠른 속도로 추진해 창의적인 금융인이 우대받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금융사도 당국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보고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금융이 다른 산업의 발전을 돕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지 발목을 잡는 걱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토론회에 참석한 벤처 CEO들이 당국과 금융사 모두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듯 금융소비자들이 양자를 보는 시선은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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