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요즘 30대 미혼 여성들이 모이면 '썸'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해 한탄으로 끝이 난다. 친구인 듯 우정 아닌, 그렇다고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 보통은 사귀기 전 서로를 탐색하는 기간을 '썸'이라고 칭하는데, 이 단어가 생긴 뒤로 모든 관계가 가벼워졌다는 게 보편적인 생각이다.
두세 달을 만나도 깊은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썸' 언저리에서 맴돌다 끝나는 경우가 많고, 동시에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썸'이라고 얼버무리는 경우도 많은 게 사실. 심각한 경우는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서로 어장관리만 하면서 '썸'에 머무르는 때도 있다.
물론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의 입장에서도 '썸'은 별로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진실된 사랑이나 결혼을 계획하는 30대 여성들 입장에서 조금 더 분통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녀간의 만남이 쉬워지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썸'이라는 용어는 아주 간편하고 쉽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방편이다. 인스턴트식 만남에 왠지 허탈감은 커져만 간다.
'썸'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등장하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지는 것도 시대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썸이 싫다"고 외치면서도 영화관을 찾게 되는 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경우가 많다. 어찌 됐든 영화는 해피엔딩일테니, 썸만 타다 끝나는 현실을 잠시 잊어보기 위함이 아닐까.
할리우드 영화 '러브, 로지' 같은 경우 장기간 썸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이 한 순간의 실수로 바뀌게 되는 남녀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18세 생일 때 '썸남'과 운명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로지(릴리 콜린스 분)는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고, "어제 일은 잊고 싶다"는 말로 상대의 희망의 끈을 잘라버린다.
두 사람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계속해 타이밍이 어긋나며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트는 감정들이 우리네 현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썸타는 기간이 비현실적으로 길다. 이들은 무려 12년간 우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후반부에 가서 깨닫게 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국내 영화 '오늘의 연애'도 썸에 대해 말한다. 일단 주인공이 이승기와 문채원이라는 점도 관객들을 솔깃하게 만든다. 두 사람의 썸은 좀 더 심각하다. 무려 18년지기 친구이기 때문이다. 항상 100일도 못 가 여자친구에게 차이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이승기 분)는 오랜 친구 현우(문채원 분)에 대한 애정을 감추고 사는 인물이다.
현우는 잘 자나가는 기상캐스터로, 주변에 남자들이 득실대는 여자다. 임자 있는 회사 선배(이서진 분)부터 적극적 연하남(정준영 분)까지 그녀에겐 '썸남'이 많아도 너무 많다. 현우와 준수는 데이트메이트이자 술친구이며 오피스텔 비번까지 아는 사이지만 애인은 아닌, 그야말로 속 터지는 관계다.
CJ엔터테인먼트가 공개한 배우들의 '썸' 친필자작시도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정준영의 시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썸 탄다는 말 덕분에 어장관리란 말 줄어드니 바람둥이들만 신났네'라는 내용이다. 문채원의 시도 재미있다. '괜히 톡했네'라는 제목의 이 시는 '자니? ㅇㅇ'으로 끝이 난다. 이불 속에서 발차기를 할만한 민망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그려냈다.
어쨌든, 끝이 보이지 않는 썸으로 속앓이를 하는 많은 이들이 벌써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나의 썸도 영화처럼 아름다운 결실을 맺길 기원하면서.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