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윤회 동향문건' 파문이 터지자마자 법조계에서는 결론을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라는 핵심 의문이 풀릴 것으로 보는 이들은 드물었다.
권력 핵심부는 덜 다치는 방향으로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질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왔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질 사람'이 누구일지도 예측되는 흐름이었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을 박지만 EG 회장 측에 전달한 '제2의 유출경로'로 조 전 비서관을 지목했다. 검찰은 문건 작성 직후 박 회장과 조 전 비서관이 서울 강남의 중식당에서 만났다고 전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은 조 전 비서관의 정치적 자작극이다.' 검찰이 진작에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이제 발표만 남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조 전 비서관이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박 회장을 이용했다는 게 검찰 수사의 큰 줄기다.
그러나 '조응천 자작극' 시나리오는 법원에 의해 급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누설 혐의 등으로 조 전 비서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법원은 "범죄 혐의 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이 혐의 입증도 덜 된 상태에서 서둘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망신을 당했지만 시나리오의 최종 결론이 달라질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상태에서 이유를 다시 끼워 맞추는 작업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이다. 그는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처음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할 때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정윤회씨와 대질신문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가 억울하다며 눈시울을 붉힌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 '시나리오'가 진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은 것일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