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불황에 기업들 종무식도 생략…
"연봉 삭감 안되면 다행" 드라마보다 살풍경
[아시아경제 김소연 기자]12월31일. 2014년이 하루 남았다. 사무실 분위기는 썰렁하다. 오히려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회사는 수년간의 불황에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까지 겹쳐 올해 성과급을 못 준다고 공표했다.
"수년 간의 불황이라…나는 올해 입사 첫 해인데..." 힘겹게 한 해를 마무리했는데 아무 보상도 없다. "어쩔 수 없지..." 떨궜던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장그래의 촉촉한 눈에 오상식 과장이 들어온다.
"여보, 올해는 성과급이 안 나올 것 같아. 우리 애들 방학 때 어학연수 보내는 거 다시 생각해보자." 힘겹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오 과장의 어깨가 오늘따라 더 축 처져보인다.
업무에 치이고 상사에게 치이는 직장인들, 드라마 '미생' 속 인물들은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동기, 맞은 편 큰 책상에 앉아있는 상사, 한 건물 안에서 마주치는 선후배 모두가 '장그래'들이다.
2014년 연말. 현실 속 장그래들의 어깨는 펴질 줄 모르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 탓에 기업들이 너도나도 '절약'을 외치면서 독특하고 이색적인 종무식, 시무식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다. 직장-집 혹은 직장-회식-집,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왔던 장그래들에게 1년에 한번씩 '웃음꽃'을 피워줬던 성과급도 올해는 없다. 그나마도 연봉 삭감이 안 되면 다행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위 잘 나가는 사업부로 연말이면 두툼한 성과급을 챙겼던 A씨는 오래 올해 실적이 부진한 탓에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직장생활 5년만에 처음이다. 다른 부서 직원들도 평가에 따라 연봉이 동결되거나 삭감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면서 연말 특유의 들뜬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나마 낙 이었던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도 최근에는 뜸해졌다. 회사측이 경비절감을 내세운데다 비상경영 상황이라 늦게까지 야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회사측이 한 푼이라도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남은 연차 소진을 독려하면서 사무실 자리의 절반이상은 비어 썰렁하기 까지 하다. 올해는 종무식도 아예 없다.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이 행운이다. 상사로 모시던 50대 임원은 짐을 쌌다.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주인공 스칼렛이 절망의 끝에서 "내일은 내일의 내양이 뜬다"고 읖조렸던가. 요새 '장그래'들도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년은 올해보다 나아져서 인센티브도 많이 받고 휴가도 자유롭게 쓰리라, 한 줄기 기대 속 힘든 연말을 버텨본다.
김소연 기자 nicks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