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빅시리즈<11>이전 공기관 종사자, '싱글살이'의 항변
-이전 직원 75%가 나홀로 이주…9.7%는 2~3시간씩 걸려 통근
-김천 조달품질원 가족이주 딱 1건
-충주 가스안전公도 3.3%밖에 안돼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 #대한지적공사에 다니는 이모씨는 지난해 11월 회사가 전북 혁신도시로 이전한 이후 회사 근처에 원룸 하나를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서울에서 중ㆍ고고를 다니는 자녀 둘을 둔 그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하루 세끼를 때우는게 다반사다. 금요일 저녁엔 어김없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는 "초기엔 가족들과 함께 내려올까도 생각해 봤지만, 학교는 물론 학원수도 턱없이 부족한 곳으로 애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며 "주위에 나같은 이유로 혼자 내려온 직원들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이달 말 본사를 서울에서 대구 혁신도시로 옮기는 신용보증기금. 이 곳에 20년 넘게 근무한 박모씨는 '나홀로 이전'을 결정한 뒤 고민이 산더미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아내와 대학생인 딸이 함께 이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임시 주거지를 마련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는 "막상 떠나야하는 날이 코앞에 닥치니 이제야 주말가족이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된다"며 "식사 문제는 물론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수도권에 밀집해 있던 115개 공공기관을 지방 10개 도시로 이전ㆍ분산하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속도를 내며 착착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 초반에 벌어지게 마련인 과도기적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역출신 인재채용과 사회봉사 등으로 지역사회와 협력은 우선 성과를 보이는 데 비해 임직원의 이주와 정착 문제 해소는 요원한 듯 보인다. 업무효율 제고 문제를 논하기 앞서 직원들의 주거와 출퇴근, 일상생활 등에서 장애가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현재 이전 공공기관 직원의 75%가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나홀로' 이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총리실에서 올 상반기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전을 마친 40개 공공기관 7739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가족 동반 이주 비율은 25.3%(1951명)에 불과했다. 전체 조사 대상 중 5022명(65%)은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떠난 경우였고, 기존 주거지인 수도권에서 통근하는 직원도 752명(9.7%)에 달했다. 10명 중 1명은 출퇴근에 수백㎞씩 두세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충북 진천ㆍ음성에 들어서는 충북혁신도시처럼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혁신도시에서는 수도권을 왕복하는 통근버스를 운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국가기술표준원 상당수 직원들이 통근버스 안에서만 하루 3~4시간씩 허비하고 있다.
가족 동반 이주율이 가장 낮은 기관은 경북 김천의 조달품질원으로 이전 인원 64명 중 단 1명(1.6%)만이 가족 동반으로 이주했다. 충주의 충북혁신도시로 옮긴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이전 인원 397명 중 13명(3.3%)만 동반 이주했다. 울산 근로복지공단은 451명 중 39명만(8.6%)이 대한적십자사, 대한법률구조공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교통안전공단 등도 동반 이주 비율이 4~7%대로 낮았다.
또한 나 홀로 이주자 중 앞으로 동반 이주 의향을 가진 경우 또한 403명으로 전체의 7%에 불과했다. 농식품공무원교육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이전한지 1년이 넘은 기관도 가족을 두고 홀로 지방에 거주하는 비율이 70%를 넘었다. 단기간에 나홀로 이주나 주말부부 상황이 크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원인은 배우자 직장·자녀교육 문제
대형마트·쇼핑몰·교육시설 등 생활인프라도 턱없이 부족
상주인구 크게 증가한 세종시에도 아직 종합병원 하나 없어
이전기관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들의 교육 문제다. 초ㆍ중ㆍ고생 자녀를 둔 직원들 입장에선 아이들의 교육 문제 만큼 만감한 문제도 드물다. 또 맞벌이 공무원의 경우 배우자 직장이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직장을 포기하면서까지 배우자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갈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충북현신도시로 내려간 한국가스안전공사의 한 직원은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뒤처진다고 평가받는 지방으로 아이들을 보내자는 데 쉽게 동의하지 않는 가족이 많다"며 "한동안 '기러기 아빠'를 감수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백화점, 대형마트 등 쇼핑공간과 병원ㆍ편의시설 등 생활 부대시설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가족동반 이주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혁신도시 내 교육 인프라나 편의시설이 부족해 이전 기관 직원들이 불편을 겪으리라는 점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다. 이전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세종시의 여건을 들여다보면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세종시는 중앙부처 이전이 막바지 단계라 상주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병원이나 교육ㆍ쇼핑 시설, 교통시설 등 생활인프라는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세종시 신도심에는 아직 종합병원 하나 없다. 500병상 규모의 세종 충남대병원이 이제 겨우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2018년 개원을 목표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의료인 숫자도 전국 최하위권이다.
가족동반 이주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혁신도시별 수요 조사를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연구소장은 "주거환경의 기초를 잘 닦아 지방근무에 따른 불편을 해소해야만 공기관 직원 가족 이주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5년까지 공공기관을 혁신도시로 100% 이전한다는 목표에 급급할 게 아니라 혁신도시를 통해 지역 역량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심 소장은 "직원들이 평일 혁신도시에서 근무하고 주말에 수도권으로 가버리면 도시가 공동화된다"며 "지역발전이라는 공공기관 이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직원들이 편리하게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문화 여건을 조성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때아닌 혁신도시발 기러기족 증가현상에 대해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역민들의 삶도 중요하지만 이전하는 공기관 직원들의 삶도 존중받아야 한다"며 "공기업에 다니니 '국가가 시키면 따라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는 말로 홀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주거ㆍ교육ㆍ복지 등 공기업 직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 수 있는지, 또한 실효성 있는 추가 조치들은 무엇인지 등을 숙고한 후 즉각 실천해 옮겨야 혁신도시 조성의 취지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김민진 차장(팀장)·고형광·오현길·조민서·이창환·박혜정·이민찬·윤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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