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 실태를 담은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가 9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이 보고서에는 2001년 9·11사태 이후 알카에다 대원등 테러 용의자들에 대해 물고문, 성고문 등 광범한 인권 침해가 자행됐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에따라 미국 정부는 국제 테러 집단의 보복 공격에 대한 우려로 해외 외교 공관등에 대한 경비 강화에 나섰다. 국방부도 경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비밀로 분류된 총 6800쪽 분량의 내용을 약 500쪽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는 "알카에다 대원등을 상대로 한 고문은 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것일 뿐 아니라 효과적이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아닌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 위치한 비밀 수감시설에 수감된 알카에다대원들에게 자행된 CIA의 고문 실태를 적시했다.
CIA는 테러 용의자를 조사하면서 '향상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을 통해 수감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높은 물고문과 성고문 위협등 잔혹한 고문을 실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보고서는 CIA가 일반 국민이나 의회에 설명해온 것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잔혹한 고문을 했지만 테러 위협을 막을 정보를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 나온 고문 행위가 대부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 시절에 자행됐던 것이어서 이를 둘러싼 미 정치권내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9· 11 사태이후 어려운 시기에 많은 올바른 일들을 했지만, 일부 행동은 우리의 가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대 테러 대책 노력과 우리의 국가안보 이익에도 부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가혹한 고문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에 중대한 타격을 주고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앞으로는 절대 이런 방법(고문)에 의지하지 않도록 내 권한을 계속 행사하려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다”면서 “그러나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단점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화당의 반발을 의식, “이번 보고서 공개가 해묵은 논쟁을 재점화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 공개에 대한 공화당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존 브레넌 CIA 국장은 과거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CIA의 조사 기법이 테러 위협을 막고 실제 공격 음모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혹독한 조사를 통해 실제 테러 계획을 좌절시키고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고 미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했다”고 주장했다.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색스비 챔블리스(조지아) 상원 정보위 공화당 간사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CIA의 이런 조사 방식이 주요 테러 용의자를 잡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보고서 공개가 미국 국가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CNN 방송에 출연, “우리를 위해 CIA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면서 “이들은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했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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