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하지만, 누군가에겐 늘 어렵고 단단한 존재다. 아파도 울 수 없고 힘들어도 멈출 수 없는 한 집안의 기둥. 그런 아버지에게도 코 찔찔이 어린 시절이 있고,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추억이 있으며, 모두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네 아버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윤제균 감독은 대학교 2학년 때 여읜 아버지의 본명 '윤덕수'를 주인공의 이름으로 정할 만큼,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작품은 1950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덕수는 피난 과정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고 어머니와 두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부산으로 피난 간 그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공부를 잘하는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대기 위해 덕수는 독일에 광부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 영자를 만나고 난생 처음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덕수는 또 한 번 가족을 떠나 베트남으로 향한다.
전쟁통에서 목숨은 부지했지만 다리에 총을 맞아 절름발이 신세가 된 그를 보며 아내는 오열한다. 하지만 덕수는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일념 하에 누구보다 강한 생활력으로 가정을 지켜나간다. 조금은 괴팍하고 안하무인의 70대 노인이 된 그를 보며 자식들조차 혀를 내두르지만 그 이면에는 '일생 동안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가 "꽃분이네서 만나자"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40대인 황정민은 극중 20대 연기부터 70대 노인까지 소화하며 대단히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한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70대를 연기하기 위해 몸의 움직임, 서 있는 자세까지도 세세하게 고민했다는 그는 자연스러운 특수분장보다도 더욱 자연스러운 노인 연기로 또 한 번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아내 영자 역을 맡은 김윤진은 '백의의 천사'로 변신해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며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또 황정민의 엄마로 분한 장영남은 탁월한 이북 사투리 구사는 물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로 몰입을 돕는다.
신스틸러에서 어엿한 주연으로 발돋움한 오달수 또한 실망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황정민의 친구로 50년을 함께한 그는 특유의 장기인 코믹 연기로 극에 양념을 제대로 쳤다. 정진영과 라미란은 짧은 출연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제몫을 해냈고, 김슬기 역시 귀여운 매력으로 작품에 발랄함을 더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눈물을 쏙 빼놓는다. 중간 중간 감독의 재치가 빛나는 웃음 코드들이 있고, 중반 이후에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 힘들 정도로 감동이 밀려온다. 아버지라는 이름 하에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한 남자의 이야기 앞에 울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버지의 역사가 곧 이 나라의 역사'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개봉은 오는 12월 17일.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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