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만 제대로 골랐어도...무성의 불친절 치료로 사망 의심..."신해철이 부럽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실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의사는 절대 되지 마라."
지난 2012년 말 암으로 숨진 이모(당시 45세)씨가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유명하다는 서울 서대문의 한 병원에 입원했지만 의료진들의 무성의와 불친절, 잦은 실수 등을 겪다가 병세가 악화돼 숨지면서 남긴 한 마디였다. 이씨의 유족들은 최근 고(故) 신해철씨의 사망으로 의료사고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요즘, 환자를 인간으로 대할 줄 아는, 성실하고 친절한 다른 의료진을 만났더라면 이씨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가슴아파하고 있다.
이씨의 부인 김미영(가명)씨는 이와 관련 18일 아시아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의료 사고 가능성이 제기돼 진상 조사 중인 신해철씨가 차라리 부럽다"며 "대한민국 의료현실에 대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 것을 바꿔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씨는 동네 병원에서 1차 내시경 검사를 한 뒤, 암 소견을 받은 후 제대로 된 진단ㆍ치료를 위해 서대문의 한 병원을 선택했지만 신속한 검사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백'이 없는 탓인지 정밀검사 신청을 한 뒤 한달 만에야 겨우 날짜가 잡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검사 후엔 해당 암 분야 권위자라는 모 교수의 특진을 요청해 약속을 잡고 찾아갔지만 '대학원 수업 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도 못했다. 남편의 생사가 걸린 약속을 무시당한 김씨가 "환자의 목숨보다 수업이 더 중요하냐"고 항의를 하자 30분 안에는 강의가 안 끝나 못 온다던 해당 교수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나타났다. 게다가 해당 교수는 진료 차트에 "부인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식의 악의적 기록을 남기기까지했다.
이후에도 병원 측의 불성실한 치료는 이어졌다. 월 1회 주는 항암제를 다른 약으로 준 것이 두 차례 발견된 것이다. 꼼꼼한 성격의 이씨가 약 포장지 글자를 모두 일일이 확인한 덕에 다른 약 투약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자칫하면 병원 측의 실수로 엉뚱한 약을 먹을 뻔했던 것이다.
의료진들의 환자들에 대한 불친절도 심했다. 의사들은 '질문'을 극도로 싫어했다. 오죽했으면 환자 가족들이 모여 "이 병원 의사들은 잘 지내셨습니까, 어떠십니까, 나중에 보시죠라는 세 마디밖에 할 줄 모른다"며 비꼴 정도였다. 김씨는 "전국 각지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온 환자들은 특진비까지 내고 며칠을 걸려 기다리고 기다려 의사를 만난다"며 "그런데 겨우 이런 세마디가 고작이면 환자와 가족들은 허탈하다. 특진비가 아까웠다"고 호소했다.
특히 김씨의 경우 회사일과 간호를 병행했던 까닭에 의사들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의 상태를 알고 싶어 10차례 이상 전화와 메모를 남겼지만 회진 시간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끝내 담당 의사를 만나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작해야 밤이나 새벽에 회진을 도는, 젊은 수련의만 만날 수 있었다.
김씨는 "새벽에 인턴이 왔지만 기본적인 병명도 모른 채 이런 저런 질문만 해댔다. 몇 번이나 알려줘도 계속 물어보기만 했다"며 "어떤 인턴들은 마치 남편을 실험대상이나 연구대상인 양 연일 증상부위의 사진을 찍어댔다. 마지막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존중이 전혀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대한민국 암환자와 암환자 가족들은 '신해철 의료소송'을 보면서 자신의 문제처럼 아파하고 있을 것"이라며 "한편에서는 나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나의 억울함을 풀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해철 의료소송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엇갈린다"고 털어놓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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