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기업의 한국지사 대표를 지낸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뉴욕 본사로부터 한국지사에서 동성애자 커플을 위한 모임이나 파티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지사의 연혁이나 규모로 볼 때 동성애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을 위한 파티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채용 등에서 인사상의 차별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들이 성정체성을 공개할 수 없게 만드는 억압적인 조직문화가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어느 쪽이건 자신들의 경영방침이나 조직문화에 배치되는 것이며 적극적인 개선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 제대로 동성애자 직원을 위한 파티를 열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창조도시라는 개념을 주창하여 세계적인 명망을 얻고 있는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의 창의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게이의 비율을 꼽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실제로 동성애자, 특히 게이들이 더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게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창의적인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소위 창조산업이라 일컫는 패션, 디자인,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게이 비율이 높은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방적인 사회가 창의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며칠 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는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그의 '커밍아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인권의 확장에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월 '게이 격차(Gay Divide)'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현재 110개국에서 동성애자 결혼이 합법적이며 특히 중국, 한국 등의 아시아 국가에서도 점차 편견이 줄어들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78개 국가에서는 불법이며, 이란에서는 교수형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돌을 던지는 형벌을 주는 등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나라별 격차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서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동성애자 결혼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는 반면 이슬람국가 등 일부에서의 반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팀 쿡의 커밍아웃에 대해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지지를 보내는 것도, 아직 보수적인 세상을 향한 연대와 공감의 제스처일 것이다.
하지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두 번째 의미, 즉 기업 경영, 특히 인적자원 관리의 측면이다. 세계적인 기업일수록 재능이 있고, 조직의 비전에 적합한 인적 자원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인종이나 성별 등의 요인에 따라 차별적으로 채용한다면 '최고의 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없다. 그리고 조직 구성원들이 창의적이기를 원한다면 조직문화가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하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동성애자가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조직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다양성, 창의성에서 앞서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팀 쿡은 그동안 조직 내외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혀 왔고, 동성애자를 위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해왔다. 그럼에도 애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CEO의 자리에도 올랐다. 애플 이사회는 팀 쿡의 커밍아웃에 대해 "우리는 팀 쿡이 자랑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지원했다. 애플의 인적자원관리나 조직문화가 세계적인 혁신기업이 되기에 충분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은형 美 조지폭스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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