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에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의의 초점은 공무원연금의 재정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의 지급 부족분을 메워주는 국가 보전금이 올해 2조5000억원에서 2020년에는 6조2000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현행 공무원연금 제도를 유지할 경우 정부가 메워야 할 '미래 부채', 이른바 충당부채는 484조원에 이른다. 더구나 인구 고령화로 인해 본인 연금뿐만 아니라 배우자 유족연금까지 고려하면 재정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무원연금공단은 너무 안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2010년부터 올해 8월까지 퇴직급여와 수당 등을 잘못 지급한 사례가 총 1483건, 금액으로는 무려 358억3200만원에 이른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차제에 손을 보기는 해야 하겠는데, 어제 관련 토론회가 무산되었듯 이해관계자들이 워낙 많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자가 많을수록 큰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여러 원칙이 충돌할 경우 상위 원칙을 우선으로 하여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문제를 접근할 때의 큰 원칙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노후를 위한 대비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받는 구조는 이러한 큰 원칙에 어긋난다. 더구나 매년 부족분을 국민 세금에 기대는 구조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형평성을 따질 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간 단순한 연금 지급액 비교는 지양되어야 한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대등한 직급을 서로 비교하여 종합적인 기준으로 형평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 급여가 민간 부문에 비해 낮고, 공무원들이 내는 연금액이 국민연금에 비해 높다는 점, 20년 이상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연금을 내는 기간이 길다는 점 등이 종합적으로 감안되어야 한다.
공무원들도 현재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민간 부문에 비해 불리한 점만 강조하지 말고 자신들이 민간 부문에 비해 누리고 있는 혜택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명분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개혁 과정에 협조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우수한 인재들이 공공 부문으로 들어가야 하며, 공무원연금 개혁에도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지켜야 할 또 다른 원칙은 소급 적용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당장은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합리적 절충안으로 보일지라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비용을 치러야 하고 위헌 소지도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함께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국민정서를 지나치게 반영하여 대중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입안해 추진하면 나중에 후유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또 다른 원칙은 연금이 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원은 항상 유한한데 누군가가 너무 많이 가져가면 다른 누군가는 적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연금은 노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각자가 부담한 금액에 걸맞게 받아가면서도 연금액의 차이를 가능한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도 이 문제를 건드리기가 매우 꺼려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으로 볼 때 꼭 해야 할 일이라면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책무이다.
지금부터 1년 7개월 동안 선거가 없는 이 시기를 놓치면 공무원연금은 영영 개혁을 못 할지도 모른다. 정부와 여당은 실기하여 국가의 주요 제도를 망쳐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않기 바란다.
김창수 연세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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