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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피케티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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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피케티를 좋아하세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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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프랑수와즈 사강이 쓴, 아주 감성적인 사랑의 이야기이지요. 대학 1학년 때 이 책을 한동안 가방에 넣고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책은 아주 대충 읽었고 그리 맘에 와 닿지도 않았습니다만, 혹시라도 여학생들이 보면 그런 책을 읽는 저를 멋있다고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우선 멋있고, 저자 이름도 낭만적이고, 물음표가 반대 방향으로 표시된 프랑스어 글씨는 그 절정이었지요.


이런 유치한 지적 허영은 잘 고쳐지지 않는 병인 듯 합니다. 이 나이 먹도록 앓고 있으니 말입니다. 플라톤이나 괴델과 같은 고전들을 여러 판본으로 사서 서문만 읽고 묵혀 두는 짓들을 요즘에도 계속합니다. 화제가 된 책들을 서둘러 사서 여기저기 적당히 펼쳐 보고 다 읽은 척 하기도 합니다. 900만부나 팔렸다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1만명밖에 안 된다는데 뭘…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이지요.

이처럼 허세주의자인 제게 부담이 되는 책이 또 나왔습니다.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입니다. 820쪽에 달하는 책을 벌써 두 번째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좀 김빠지는 것은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세미나, 기사들이 한참 전부터 쏟아진 데다가, 책의 국내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책이 벌써 나왔습니다. 비판서들이 원래 책보다 훨씬 얇기 때문에 원전보다 먼저 읽어 보고 싶은 충동도 듭니다.


그런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피케티 '현상'은 이 책의 주장에 대한 학문적 관심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크고 뜨겁습니다. 뭔가 더 있는 것이지요. 마치 '명량'의 큰 흥행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이유에서 뿐 아니라, 자기희생적 리더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피케티 '현상'에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주류경제학은 남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복잡한 수식을 통해 학문의 권위를 쌓고 그 권위에 기대어 교리를 설파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런 교리를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균형의 세계는 찾아볼 수 없고 자신이 사는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기만 한다는 것이 이런 배교의 이유입니다. 이런 자각은 주류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영국의 프로스펙트라는 잡지가 뽑은 '세계적 사상가' 명단을 살펴보면 주류 경제학자들 대신 아마티아 센이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을 옹호하고 피케티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불만이 착시라고 말합니다. 한쪽은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이 환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논쟁이 커질수록 우리는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경제학이 과학이라면 불평등이 커지는지 작아지는지 누구나 검증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에릭 바인하커나 데이비드 오렐과 같은 학자들은 경제학이 낡은 고전물리학을 흉내 낸 가짜 과학이라고 봅니다. 장하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요. 경제학이 이래저래 수난의 시대를 맞은 듯 합니다.


요즘 피케티를 둘러싼 찬반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집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아들뻘 되는 것이 감히…"라고 역정을 낸 우리나라 학자도 있답니다. 그러나 제 스스로 찬찬히 타일러 봅니다. 이번만큼은 꼼꼼히 읽기. 미리 입장 정하고 맘대로 해석하지 않기. '피케티를 좋아하세요?'라고 다짜고짜 묻지 않기.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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