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잡아먹는 물귀신 약엔
일본 추가 양적완화 확대 카드에 엔달러환율 113엔 눈앞
재무건전성 개선된 日기업들의 대약진…국내 IT·車 위협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사상 최대' 수출이라는 호재에도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양적완화(QE) 종료를 선언한 미국과 양적완화를 확대하는 일본에 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와중에 중국과 유럽 경기는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달러 강세는 수출에 긍정적이지만 엔저는 반대다. 급속한 엔저에 힘입어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제품에 밀려 우리 주력 제품들의 수출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스마트폰·자동차 수출 삐걱=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누적 수출은 4771억28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 철강제품과 선박·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전체 수출 가운데 10%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누적 수출은 485억7600만달러로 전년 대비 8.6% 신장했으며 선박은 지난해보다 9.3%, 철강은 10.5% 증가하면서 선방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반도체와 함께 수출의 한 축을 차지했던 스마트폰은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무선통신기기를 포함한 산업용 전자제품 수출액은 409억29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율이 15.3%에 달했던 것에 비교하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자동차 수출액도 376억43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지만 지난해(3.0%)보다 성장세가 둔화됐다. 노조 파업과 러시아·브라질 등 신흥시장 경제 불안이 수출 감소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과 일본·유럽연합(EU) 수출은 둔화되고 있다. 1월부터 지난달 20일까지 누적 대중 수출은 1141억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4% 감소했으며 대일 수출도 4.8% 줄어든 260억6200만달러에 그쳤다. EU에 대한 수출은 5.7% 증가한 585억6100만달러를 기록했지만 작년(12.3%)에 비해 성장세가 반 토막 났다.
◆'초고속 엔저'에 공포감= 이날 오전 10시 현재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84% 오른 1077.5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간 엔·달러 환율은 3.22% 상승한 112.36엔으로 훨씬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특히 최근 석 달간 엔화가치는 원화가치보다 2배가량 하락했다. 미국의 QE 종료에도 일본이 추가 QE 조치에 들어가면서 엔·달러 환율은 연말 113엔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엔저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일본기업들이 수출단가 인하에 본격 나설 경우 우리 수출에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무역협회는 지난달 초 발표한 릫엔저와 우리 수출입 동향 및 영향릮 보고서를 통해 “향후 일본이 본격적인 단가 인하에 나설 경우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우려는 산업현장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엔화 약세로 인한 영업이익 증가를 발판으로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고 신차 투자에 박차를 높여 다양한 차종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일본의 약진에 시장점유율 2위 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 들어 4·6·9월 세 차례나 수주 경쟁에서 일본에 뒤졌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실장은 “2012년 이후 엔저현상에도 불구하고 수출제품 단가를 유지해온 일본 기업들이 이번 추가 QE에 힘입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경우 단가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 제조업에는 상당히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들은 내년도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것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용옥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내년도 경기 전망 예측도 전반적으로 연초 예상보다 갈수록 수치가 내려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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