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제한속도가 없는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독일의 완벽한 사회기반시설을 대표하는 좋은 예다. 그러나 최근 독일의 사회기반시설 투자 축소로 향후 각종 사회적ㆍ경제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세계적 석학인 마르첼 프라츠셔 독일경제연구소(DIW) 소장의 말을 인용해 2000년 이후 근로자 3명 가운데 2명꼴로 임금이 줄고 경제성장률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평균에 못 미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라고 최근 지목했다.
독일 경제의 체력이 겉보기와 달리 떨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 주도의 투자를 당장 늘리지 않으면 독일 경제의 영광은 계속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많은 이가 유럽 경제의 문제아로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프랑스를 꼽는다. 그러나 이들 나라보다 독일의 구조적 문제가 더 크다는 진단은 유럽 경제의 역할모델인 독일도 언제든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라츠셔 소장은 지그마르 가브리엘 전 독일 재무장관과 함께 발간한 저서에서 이를 '독일의 환상'이라고 표현했다. 독일이 위기와 동떨어져 있는 듯했지만 어느덧 위기에 바짝 다가서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은 이미 2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유로존 경기부진에 전염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독일 연방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는 전분기 대비 0.2% 감소했다. 이는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9월 제조업 구매자 관리지수(PMI)는 예상치(51.2)에 크게 못 미친 50.3으로 경기 불안감만 키웠다.
프라츠셔 소장은 "독일 경제가 활력을 잃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만 해도 독일은 GDP의 25%를 도로 신설, 통신망 확충, 교육 시설 확충에 사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 비율은 19.7%로 낮아졌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부진한 성적이다.
프라츠셔 소장은 "현 경제상황을 유지하는 데만 연간 1030억유로(약 137조9252억원)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 투자의 부진도 심각하다. 독일 기업들은 현금 5000억유로를 쌓아놓은 채 투자는 외면하고 있다. 독일 민간 기업의 투자율은 2000년 21%에서 지난해 13%로 줄었다. 프라츠셔 소장은 "이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공공 부문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프라츠셔 소장은 정부의 재정건전성 유지를 가장 우선시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정책 노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슈피겔과 가진 회견에서 "독일도 위기에 대비한 예산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기가 불거지기 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경제회생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는 무엇보다 물류체계의 혁신과 그린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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