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은석 기자]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실상 '세월호 정국 종료' 선언으로 더욱 큰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됐다. 박 대통령의 전날 국무회의 발언에 여당 지도부조차 놀란 눈치다. 야당이 강하게 반발한 것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국회의 굴욕"이라며 불만을 터트렸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정국 장기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등에 업고 세월호 논란을 매듭짓고 국회 정상화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측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이제 협상의 여지는 없어졌다"며 고개를 떨궜다. 야당을 달래 국회 정상화를 계획했던 터라 상실감이 더 크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이재오 의원은 17일 오전 최고ㆍ중진연석회의에서 "어제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회동을 보면서 정국이 꼬이면 출구를 열어주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다 막아버리면 그 책임은 정부ㆍ여당에 돌아간다"며 "우리 속담에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마라'고 하는데 출구는 만들지 못할망정 쪽박마저 깨면 정치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고위관계자도 "사실상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졌고 당의 재량권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평적 당청관계를 말하던 당으로선 굴욕적"이라고도 했다. 다른 당직자는 한 발 나아가 "국회의 굴욕"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발언 뒤, 곧바로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해 발표하고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를 찾아 박 대통령 주문에 고개만 숙이고 돌아온 모습을 빗댄 것이다. 이 당직자는 "야당이 바보가 아닌 이상 국회 정상화에 협조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당은 죽더라도 더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야당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어제 박 대통령 발언은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의회주의를 거스르는 발언으로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날을 세웠다.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도 "세월호 진상규명 의지가 없음을 밝힌 것으로 국민 무시이자 전형적인 불통"이라고 꼬집었고, 유기홍 수석대변인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물론이고 국회 정상화는 더 어렵게 되고 말았다"고 못박았다.
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세월호특별법 관련해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정해주고 그 이상은 타협 불가라는 입장을 천명한 발언은 여당 의원들에게 내리는 교지"라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가들의 국회 정상화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여당이 단독 국회를 끌고 가도 야당에선 아무런 할 말이 없던 상황이었는데 박 대통령 발언으로 야당은 다시 대통령 책임론을 강하게 들고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세월호 정국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워낙 좋지 않아 야당이 계속 국회를 공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은석 기자 cha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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