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지록위마 판결” 공개 비판…대법 “다른 재판부 공개적 논평은 삭제대상”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박준용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법원 안팎에서 판결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지록위마(指鹿爲馬) 판결'이라고 공개 비판하자 대법원이 이 글을 삭제하면서 논란은 법원 내 비판을 막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45)는 지난 13일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해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다른 법관이 담당한 사건에 관한 공개적 논평 금지규정에 위반될 여지가 있다면서 '사법부 전산망 그룹웨어 운영지침'을 근거로 김 판사의 관련 글을 삭제했다.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법원의 이번 판결과 대법원의 대응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이라고 공개 비판할 정도로 '원세훈 판결'을 둘러싼 논란은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정치정세에 따라 무죄로 판단했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결이 상식에서 벗어나 있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비판 봉쇄'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사무차장은 "판사가 판단의 논리와 문제를 지적한다면 건실한 토론이 될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삼수 정치사법팀장은 "다른 판사 판결에 대해 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재량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배심원제, 국민참여제 등 다양한 형태의 재판이 도입되는 것에 비춰볼 때 판결도 충분히 비판이 가능한 대상"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은 "법원 내 상호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비판을 봉쇄하는 게 오히려 법원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는 판결 결과와 김 판사의 공개 비판에 대해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다. 사안의 민감성에 주목하면서 법조계 안팎의 여론 흐름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대법원은 "김 판사의 글은 부적절한 부분을 담고 있어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결 재판부에 대해 지지 논평을 하더라도 똑같이 삭제대상"이라며 "삭제는 논평 내용이 고려된 게 아니라 다른 재판부에 대한 공개적 논평이기에 삭제대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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