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급 출전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악!"
찡그린 얼굴.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대표팀의 근지구력 훈련. 400m 육상 트랙을 1분 안에 주파한 정지현(31ㆍ울산시남구청)이 바로 30㎏짜리 타이어와 씨름했다. 타이어를 좌우로 수십 차례 흔들더니 호각 소리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다시 한 번 터진 비명에 안한봉(46) 대표팀 감독은 악마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소리를 지르는 거 보니 아직 힘이 남았는데." 숨을 고르기 바쁜 정지현이 겨우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갈까요?" 어금니를 꽉 깨문 선배의 서슬에 후배들의 얼굴이 굳었다.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해요. 인천 아시안게임이 마지막 국제대회거든요."
19살 때 처음 발을 디딘 태릉선수촌. 그레코로만형의 최고참이 됐지만 의욕은 12년 전 이상으로 뜨겁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급 금메달의 영광은 잊은 지 오래.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지옥훈련을 자처한다. 사실 체급을 바꾼 것부터 그에게는 도전이었다. 정지현은 4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71㎏급 결승에서 막사트 에레체포프(24ㆍ카자흐스탄)를 누르고 8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복귀했다. 세 번째 아시아선수권 제패. 그 의미는 조금 남달랐다. 2004년 60㎏급과 2006년 66㎏급에 이어 또 한 번 체급을 상향 조정해 얻은 결실이다. 역대 한국 레슬링에서 아시아선수권 세 체급 우승을 이룬 선수는 정지현과 박명석(44ㆍ창원시청 감독) 둘뿐이다.
정지현은 "국제대회에서 만난 71㎏급 선수 모두가 나보다 힘이 셌다"며 "파워 차이가 적어도 키가 커서 조금만 방심하면 큰 점수를 내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키는 165㎝.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에레체포프는 172㎝다. 정지현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경계대상 1호로 꼽는 사이드 무라드 압드발리(25이란)도 170㎝다. 파워와 기술도 뛰어나다. 2012년 월드컵 그레코로만형 66㎏급 우승자로 올해부터 71㎏급에서 활동한다. 그는 지난 5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월드컵 그레코로만형 71㎏급에서 정상에 올랐다. 당시 6위에 그친 정지현은 "66㎏급에서 김현우(26ㆍ삼성생명)를 괴롭혔던 선수다. 빈틈을 거의 내주지 않을 만큼 강하지만 정면에서 부딪혀보겠다"고 했다. 그는 체격이 월등한 상대를 끊임없이 파고들 계획이다. 안 감독은 "스피드와 지구력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정지현은 "아시아선수권을 우승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강한 체력이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반까지 바쁘게 움직여 상대를 지치게 만든 뒤 기습적인 공격으로 승부를 내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대등한 힘 대결을 위해 평소 체중을 7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살을 빼는 게 힘들다고 판단해 체급을 올린 정지현은 오히려 이 때문에 고심한다. "저녁을 잔뜩 먹어 체중을 72㎏로 올려도 다음날 운동을 마치면 70㎏으로 준다. 고칼로리 음료에 단백질 프로틴을 끼니마다 타먹었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체중을 불릴 생각은 없다. "스피드와 지구력으로 승부를 내야 하잖아요. 파워 보완도 필요하지만 강점까지 잃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 국제대회를 즐겨보겠습니다."
◇ 정지현 프로필
▶생년월일 1983년 3월 26일 ▶출생지 경기도 안양시
▶체격 165㎝ㆍ70㎏ ▶출신학교 안양 석수초-성남 불곡중-분당 서현고-한국체육대-한국체육대 대학원
▶소속팀 울산시남구청 ▶주특기 옆굴리기, 측면들어올리기
▶가족 아내 정지연(32) 씨와 1남1녀
▶주요성적
2004년 아시아시니어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0㎏급 금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급 금메달
2005년 하계유니버시아드 그레코로만형 66㎏급 은메달
2006년 아시아시니어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6㎏급 금메달
2007년 세계시니어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0㎏급 동메달
2010년 세계시니어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0㎏급 동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그레코로만형 60㎏급 은메달
2014년 아시아시니어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71㎏급 금메달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