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KB금융그룹이 금융당국과의 13년 악연을 이어가며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국민은행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제재 수위를 중징계(문책경고)로 상향 조정하면서 또 다시 악연의 불씨를 당겼다.
역대 KB금융그룹 수장 가운데 김정태 전 은행장과 황영기 전 회장, 강정원 전 은행장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어윤대 전 회장은 경징계를 받았다. 이번에 임 회장과 이 행장까지 합치면 6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셈이다.
이 악연의 고리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초대 통합 은행장인 김 전 행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전 행장은 2004년 9월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국민카드 합병과 관련해 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문책경고를 받았다. 김 전 행장은 바로 그 다음달 말 임기종료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8년 9월 KB의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그룹의 수장으로 임명된 황 전 회장도 불과 1년 만에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 우리금융그룹 회장 시절에 1조원대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을 냈다는 이유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황 전 회장에 뒤를 이어 은행장겸 회장직무대행을 맡았던 강 전 행장도 중징계 악연을 끊지 못했다. 그는 부실대출과 카자흐스탄 투자 손실 등의 이유로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다.
어 전 회장은 KB금융의 ING생명보험 인수가 무산된 후 터진 'ISS사건'으로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인수가 무산된 이후 주주총회 안건 분석기관인 ISS에 미공개 정보를 건넸다는 이유였다.
KB금융과 금융당국의 악연은 KB의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KB금융 CEO에 대한 '낙하산 인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마다 전 경영진에 대한 금융당국의 무리한 징계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었다. 새로운 CEO를 앉히기 위해 무리하게 징계를 하면서 자리에서 쫓아내려했다는 소문들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이번에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중징계 조치로 KB금융은 또 다시 경영이 흔들리게 됐다. 최 금감원장의 중징계 결정에 대해 이 행장은 "정식 통보를 받지 못해 아직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조직에 부담이 안 가도록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 행장이 "이사회의 거취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한 바 있어 이사회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사회 결정 전에 이 행장의 용퇴도 나올 수 있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임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건의했다. 금융당국의 문책경고를 받았다고 해서 임 회장이나 이 행장이 반드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KB금융 CEO들이 중징계 이후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를 비춰볼 때 퇴임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동반사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