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한 '과업'으로 설정했던 일을 엊그제 해냈다. 지리산 30여㎞를 이틀간 걷는 '종주'를 끝낸 지난달 31일 내 삶의 연대표는 2014년 8월3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난 자신을 칭송했다. 몇 번이고 계획했다가 무산됐던 끝에 이뤄낸 성취여서, 게다가 종주의 완성처럼 여겨지는 천왕봉 일출도 상제님의 성은으로 볼 수 있어서 기쁨이 더욱 컸다.
종주에 이렇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산이 지리산 말고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지리산에 들어가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3도에 걸쳐 펼쳐진 넓은 품, 끝없이 이어지는 연봉들과 장엄한 운해(雲海)는 지리산이 왜 '아! 지리산'이라는 감탄사로 부를 수밖에 없는 산인지를 절로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마치 중독이라도 된 듯이 이 산을 찾고 또 찾는다.
그러나 지리산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동행한 일행 중 한 명은 "지리산에 원래 흙길이 많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서 흙이 쓸려 내려가 돌산이 돼 가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진 모르나 어스름 새벽에 여러 대의 버스에서 내려 노고단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며 지리산이 이 많은 이들의 발길을 감당하기에 쉽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관리 당국은 점점 더 입산 통제에 엄격해지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대피소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절대 묵지 못하게, 거기엔 어떤 예외도 없다는 단호함을 보이고 있다.
지리산을 찾는 이들을 보며, 그리고 이들로부터 지리산을 보호하려는 이들을 보며 인간과 산의 '적정 거리'에 대해 생각게 된다. 산을 지키면서도 뭔가를 얻으려 산을 찾는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합당할까. 이는 지리산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산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산과 인간 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산과 인간 간의 대타협이 필요하다. 그 논의를 위해 산과 인간의 대표자들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한다. 산 가문에서 최연장인 지리산은 물론이고 서울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북한산, 청소년이지만 가장 높이 성장한 백두산과 한라산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 전국 곳곳의 작은 산들도 소외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산은 워낙 과묵한 성격이어서 입을 잘 열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니 대리인을 뽑아야 할 것이다. 그에 적임자가 있다면 아마도 이 땅의 많은 산들을 오른 끝에 지리산에 '귀의'한 이들 가운데 있지 않을까 싶다.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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