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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박경리의 텃밭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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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박경리의 텃밭과 '정치'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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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학공원'에는 그새 '박경리 문학의 집'이 새로 들어서 있었다. 거기엔 작가의 유품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가장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박경리 선생이 직접 만들어 늘 입고 다닌 옷이었다. 천에 최소한의 박음질만 해서 만든 것처럼 지극히 단순한 형태에 호주머니도 없이 소박한 그 모양새에 작가의 삶이 응축돼 있는 듯했다. 그 헐렁한 옷의 품에선 50년에 걸쳐 수백명의 인물들이 펼쳐내는 대하소설을 이룩해 낸 작가, 5척 단구의 몸속에 대양처럼 넓고 심원한 세계를 건설했던 이 대작가의 풍모가 느껴졌다.


박경리의 '토지'의 탁월함은 우선 그 방대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또한 그 많은 인물들이 하나하나가 다 주인공이라는 데 있다. 등장인물들은 작품 속 비중의 경중에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대사 속에서 지나가듯 언급되는 정도에 그친 인물들조차도 당당히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모든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 아니 생명력을 찾아낸 것이었다. 작가는 어떻게 그렇듯 인물 하나하나를 자신의 육성(肉聲)을 지닌 주인으로 빚어낼 수 있었을까. 수십여년의 창작의 공력과 분투가 그 바탕이 됐겠지만 나는 공원에 있는 작가의 옛집 옆 3,4평의 텃밭에서 그 단서를 보게 된다. 누군가 돌보고 있는지 지금도 호박과 고추가 영글어가고 있는 이 텃밭에서 생전의 작가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호미질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어루만졌다. 작가는 밭에서 어머니 대지의 모성과 숨결을 느꼈을 것이고 온갖 생명이 제각각 주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토지' 속의 수많은 무명씨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선생은 문학이란 그렇게 누군가를 대신해 얘기하는 이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문학이 그렇듯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것이라면 정치는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임금들이 궁궐에 논밭을 가꾼 것은 '농본(農本)'의 정신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지만 또한 흙 속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들, 결국 백성 하나하나의 존귀함을 깨우치려는 자기수양이기도 했다.

그러니 텃밭을 가꿔보는 것, 그것은 작가수업이며 또한 정치수업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이라면 그러므로 텃밭을 가꿔볼 필요가 있다. 특히 텃밭을 만들 땅이 넘칠 만큼 넓은 집에 사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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