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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호텔과 간통죄가 버젓이 상생하는 한국, 부끄러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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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한 현경 美유니언신학대 교수 "한국사회에 드리운 그림자,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러브호텔과 간통죄가 버젓이 상생하는 한국, 부끄러운 자화상" 현경 교수가 지난 달 26일부터 나흘간 경북 구미에서 열린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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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의 현경 교수(58)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개념을 흔들어놓는다. 집안일을 꾸려내는 '살림'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넓혀 "자신과 타인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에게나 따라붙는 '여신(女神)'이란 호칭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주인공"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스스로를 '살림이스트'이자 '여신 전도사'로 부르는 현경 교수를 두고 사람들은 에코페미니스트, 해방신학자, 평화운동가 혹은 '마녀'라고 부른다. '정현경'이란 이름에서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성을 뺀 '현경'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8월26일부터 나흘간 경북 구미에서 열린 '제14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행사에 연사로 참석한 현경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필요하다면 남편도 바꿔야 한다"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객석을 열광시켰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말이 어떤 뜻이냐고 물어봤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바꿔야 할 남자는 바꾸고, 계속 가야할 남자는 같이 가야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힌두교에서는 50세가 되면 가족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내면을 추구하라고 한다. 이 말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여자가 완경기를 맞는 때가 인생의 가을이다. 진정한 자기 목소리, 자신의 생명력을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


◆모든 경계를 벗어난 진보 신학자 "한국사회에 드리운 그림자,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현경 교수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여성신학 실험학교인 보스턴 여성신학센터를 졸업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7년간 이화여대 교수로 지내는 동안, 자유로운 스타일의 그를 두고 보수 기독교계에서 '마녀'라고 손가락질하기까지 했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99년 세계 진보신학의 명문인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종신교수로 부임했다. 160년 역사상 아시아계 여성이 종신교수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달라이 라마 등이 주요 위원으로 있는 종교간세계평화위원회에서도 그는 최초 아시아계 여성 위원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가 세계 신학계의 '핫'한 인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91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서다. 제3세계와 여성을 대표해 강연자로 나선 그는 당시 소복 차림으로 한국무속의 모티브를 빌려 죽은 사람들의 영을 부르는 '초혼제'를 지냈다. 이는 기독교계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세계 신학계에 그의 인상을 강렬히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2년여에 걸쳐 이슬람 순례길에 오르는 등 종교 간 경계의 벽을 스스럼없이 무너뜨렸다. 모든 경계와 차별, 권위와 억압의 반대편에 선 현경 교수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 안의 부드러운 여성성을 깨워야 한다"고 말한다.


"2006년에 이슬람 17개국을 돌면서 이슬람 평화운동가 200여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운동가들이 이상국으로 한국을 꼽더라. 내가 아니라고 반박하니 그들이 말했다. '너희는 6·25의 잿더미 속에서 40년도 안되어 부강한 나라가 됐다. 너희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다. 대장금과 겨울연가 등 한류도 너무 멋지다. 너희는 정치, 경제, 문화가 다 있는 나라'라고 하더라. 그들로부터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배웠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걸어온 발전의 뒷길에 그림자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쌍용차 파업, 군대 폭력, 세월호 참사, 성폭력 등 우리 사회의 치부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한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슬픔, 공부만 하도록 억압받고 자란 아이들의 폭력성 등은 모두 우리 사회의 그림자"이며 "이 그림자를 꺼내보고 책임을 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문화도 마찬가지다. 겉과 속이 다른, 왜곡된 구조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우리나라는 겉으로는 성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지만, 또 우리나라만큼 러브호텔이 많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면서도 간통죄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의 성은 섹시하다고 보기 어렵다. 억압돼있고, 일탈적이며, 포르노적이다."


◆우리 안의 '여신'을 깨우는 여신 전도사.."연약함의 힘이 21세기를 바꾼다"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짜 강사 시절에는 그도 많은 공격을 받았다. 죽이겠다는 협박도 여러 차례 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늘 문제가 됐다. "페미니즘은 여자가 남자 위에 올라가자는 여성 우위가 아니다. 피라미드식 질서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의 중심에 있는 동그라미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페미니스트의 이상은 랭킹(Ranking)이 아니라 링킹(Linking)'이란 말을 했다. 남녀노소가 공생, 상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페미니즘의 목적이다."


현경 교수가 최근 펴낸 책 제목은 '연약함의 힘'이다. 그가 평생을 추구해온 여성, 환경, 생명의 화두를 '연약함'이란 말로 집약하고, 이 힘이야말로 21세기를 바꾸는 힘이라고 말한다. 자기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 부드럽고 조용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힘, 무엇보다 "힘있는 사람 앞에서 쫄지 않고, 힘없는 사람 앞에서 우쭐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연약함의 힘이다. "간디가 비폭력저항을 부인한테 배웠다고 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면 앞에서는 '네'라고 말해놓고는 뒤에 가서는 절대로 안한다는 거다.(웃음) 이건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이 보여준 지혜의 힘이기도 하다. 용기있게 저항하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할 때는 적어도 아닌 것에는 따라가지 않으려는 힘이 있어야 한다. 연약함의 힘은 절대 연약하지 않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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