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진 신영운용 사장 "가치투자란 좋은 '주식' 아닌 좋은 '회사' 찾는 것"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자산운용업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치투자'라는 이정표를 나침반 삼아 앞으로 꿋꿋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만난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59)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가치투자를 항해사의 '고독한 길'에 비유했다. 주식시장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이 사장의 투자철학에 힘입어 올해 신영운용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여타 운용사들이 코스피 상승으로 인한 주식형펀드 환매에 시달리는 가운데 신영운용은 올해 공모펀드에서만 1조5391억원의 자금을 끌어들이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자금몰이에는 신영운용 대표 펀드들의 압도적인 수익률이 한 몫했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설정액 2조1288억원으로 국내 대표 가치주 펀드로 자리한 '신영밸류고배당(주식)' 펀드의 올해 수익률은 14.75%로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 평균수익률인 2.51%를 훨씬 웃돌았다. 또 다른 대표상품인 '신영마라톤(주식)' 펀드도 올해 수익률 7.97%로 우수한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두 펀드의 설정후 수익률은 무려 541.72%, 437.67%에 이른다. 장기간 묻어놨다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치주·배당주 열풍이 지속된 데다 대표 펀드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신영운용은 그야말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쯤되면 이 사장의 표정에서 여유가 묻어날 만한데 그는 침착한 표정과 태도를 잃지 않았다. 되레 시장의 '쏠림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장은 "투자자들이 가치주·배당주 등 인기있는 펀드에만 관심을 보이는 현재의 상황이 우려스럽습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당장 수익률이 좋은 펀드보다 과거 좋은 트렉레코드(운용 성과)를 쌓아왔지만 잠시 주춤했던 우량 펀드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의 배당확대정책으로 배당주펀드에 돈이 몰리면서 신영운용이 수혜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류에 편승하는 투자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크게 가치형(밸류)과 성장형(그로쓰)으로 나뉘는 펀드 시장에서 배당주펀드는 가치형에 포함되는 개념인데 현재는 과도한 열풍이 불면서 하나의 섹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펀드명에 배당주 펀드라고 붙이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해외에서는 배당을 받기 위해 주식 투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상대적으로 국내 기업이 배당에 인색하면서 배당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현재 신영운용이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발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기업 성장이 둔화되고,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최근 2년새 배당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부쩍 늘었지만, 신영운용은 이 같은 현상을 10년 전에 예견했다. 당시 아무도 배당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관련 펀드를 출시해 장기간 운용하면서 양호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배당에 대한 기대감에 우선주들이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선주 펀드를 최초로 선보인 곳도 바로 신영이다.
"가치투자란 좋은 '주식'에 투자하는 게 아닌 좋은 '기업'을 찾는 것입니다. 좋은 기업이라면 주가는 언제가 따라오기 마련이죠."
비합리적인 가격이 언젠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좋은 기업을 발굴해왔고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하우를 쌓은 것이 신영의 자산이 됐다는 이 사장은 이 같은 투자철학을 앞으로도 고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가 겪는 침체에 대해서는 소위 전문가집단이라 불리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제 몫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국내는 물론 선진국가들의 금융투자기업이 비윤리적인 행위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안기는 행태가 비일비재합니다. 이제 투자자들도 무조건 고수익을 좇을 것이 아니라 내 자산을 안전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직한 회사를 찾아야 합니다."
이 사장은 운용업계 CEO도 단기간 성과에 매몰돼 고객의 이익을 뒷전으로 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운용은 '착한 금융회사'를 표방한다. 회사 창립 당시 원종석 신영증권 대표와 미국 유수 운용사를 직접 탐방하며 가치투자만이 차별화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1996년 설립 당시부터 가치투자운용사로 시작했고, 묵묵히 가치투자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여의도에 30대 주식운용본부장 탄생이라고 화제가 됐지만 신영운용은 80대 주식운용본부장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객의 자산을 운용하는게 목표"라며 이 사장은 웃었다. 신영운용은 최고운용책임자(CIO)인 허남권 부사장을 포함해 펀드매니저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일 정도로 높다.
이 사장은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제 누군가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스스로 창조적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최근 신영운용은 해외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다음달 홍콩에서 아시아 주요 기업 200곳을 초청해 대규로 IR을 진행하는데 이 컨퍼런스에 참여해 새로운 기회를 물색할 계획이다.
"은행 단기 예금금리가 1%에 불과한 저금리·저성장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이에 따라 가치주 투자와 배당주에 대한 관심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는 이 사장은 18년간의 가치투자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이 언제든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착한 금융회사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은…지난 2010년부터 신영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는 이상진 사장은 1955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딘 이 사장은 선박영업부에서 근무하며 금융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신영증권에 입사해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DNA를 변모한다. 슈로더증권과 베어링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1996년 신영자산운용 창업 멤버로 참여한 그는 2010년 신영자산운용 대표로 취임했다. 임직원 개개인의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 회사 생존을 위한 최고의 자산이라고 여기며 인재경영을 중시한다. 수탁고 규모보다는 자산운용 성과와 투자자 수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철학을 고수하면서 신영자산운용을 국내 최고의 가치투자운용사로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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