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28. ○○○ '일본군한테 맞은 후유증, 지금도 허리 아파'
공개를 꺼리는 ○○○(86) 할머니의 정확한 동원 시기ㆍ장소는 알 수 없다.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면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할머니는 일본군한테 구타 당한 후유증 탓에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치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시장에 갔다가 집을 못찾아 한참 헤맨 적도 있다. 할머니는 한탄한다. "세상을 잘 못 만나 그렇지, 요사이 태어났으면 능력 있는 여자로 살았을 텐데…"
#29. 유희남 '여전히 우리를 얕보는 일본, 안 변한다'
1929년 충북 아산에서 태어난 유희남(85) 할머니.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 중 유독 언론에 얼굴이 노출되길 꺼려 카메라를 피한다. 지난 6월 배춘희 할머니의 영결식 때도 시종일관 흰 마스크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폐암 투병 중인 할머니는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고 있지만, 연로한 탓에 적극적인 항암치료나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할머니는 언변에 능하고, 총기가 살아 있다. 쉼터 내에서 '인텔리'로 불릴 정도다. 지난 8일 기자와 만난 할머니는 "(식민지 시대) 힘이 없어 당한 건데 누굴 나무라겠나. 그때 백성들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다"면서도 "일본이 여전히 우리를 얕보기 때문에 요즘도 태도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30. 윤○○ '독립군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13살에 끌려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83) 할머니는 독립군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13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차출됐다. 하루 수십명씩 밀려드는 일본군인들을 상대하면서 두려움과 고통에 소리치면 일본 군인은 할머니를 더 난폭하게 대했다고 한다. 일본군한테 그렇게 고초를 겪고도 할머니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이 너무 불쌍해 도와줘야지"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할머니는 서울 서초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손주자랑, 자식자랑이 할머니의 낙이다. 큰 딸이 홀로 사는 할머니를 매일 들여다본다. 할머니 딸은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빨리 이 문제가 어떻게라도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할머니 역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갈구한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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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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