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빈섬의 알바시네]12. '은교', 사랑은 늙는 법이 없다

시계아이콘01분 45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빈섬의 알바시네]12. '은교', 사랑은 늙는 법이 없다 영화 '은교' 포스터
AD


뒤늦게 이 유명한 영화를 봤다. 그리고 내가 본 느낌을 곱씹고 싶어서 몇 개의 영화평을 읽어보았다. 놀랍게도 '노인의 성'이나 '은교의 노출' 혹은 '아동 성학대' 등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논의들이 가득하여, 내가 본 영화가 그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해졌다. 영화를 자극적이고 야하게 만들어 팔아먹자는 흥행 집착이 어느 부분에선가 끼어들지 않았다고 내가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 영화가 지닌 '위대한 점'을 읽어내는 게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빈섬의 알바시네]12. '은교', 사랑은 늙는 법이 없다 영화 '은교'의 한장면


박범신 작가의 깊은 사유의 결과이겠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신라향가 <헌화가>에 바치는 아주 열정적인 오마주라고 생각한다.


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吾兮不喩慙兮伊賜等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花兮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 성덕왕(33대) 때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곁에 있는 바위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두르고 있어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부인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 꽃을 꺾어다가 나에게 줄 사람은 없는가?" 했으나 사람들은 "거기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하고 아무도 가지 않았다. 이때 노인 하나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노랫말을 지어서 부인에게 바쳤는데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저 스토리를 박범신은, 거울을 벼랑 중턱으로 떨어뜨린 17세 은교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는 70대의 이적요시인의 모티프로 부활시켰다. 이 영화는 어린 그녀에게 바치는 노시인의 헌화가이다. 늙어가는 존재의 성적 퇴화에 대한 비감이 섞여든 것은, 리얼리티를 위한 장치 정도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 삼국유사 스토리가 묻고 있듯이 '사랑이란 무엇이냐'이다. 강릉태수 순정공은 물론이고 그 주위에서 그녀를 호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벼랑 아래 꽃을 꺾으러 가려 하지 않았다. 자기 목숨보다 저 꽃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 노인이 목숨을 걸고 꽃을 바쳤다. 이것을 뭐라 말할 것인가. 사랑은 젊음에게만 고유한 것인가. 순정은 나이들수록 사라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얘기가 아닌가.


[빈섬의 알바시네]12. '은교', 사랑은 늙는 법이 없다 영화 '은교'의 한장면


영화 <은교>의 이야기 장치들은 헌화가 노인이 목숨을 걸고싶을 만큼 사랑을 느끼는 그 대상에 대한 절절한 기록이다. 그 헌화가 노인은 다름 아닌, 늙어가는 모든 혹은 많은 남자들의 내면이기도 하다. 젊음이 상을 받은 게 아니듯 늙음 또한 벌을 받은 게 아니라는 것.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잠깐 갈아입는 무상한 육신의 옷. 그러나 사랑은 그것 저 아래에 숨어앉아 세월이 갈 수록 더욱 깊고 애절하고 뜻밖의 희열로 닥쳐드는 것이 아니던가. 누가 말했듯이 적요한 인생에 더욱 피사체가 또렷하게 보인다. 젊을 때는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그 아름다운 빛과 냄새와 소리와 그림자와 뉘앙스들이, 그제서야 보인다는 주장을, 영화는 헌화가를 빌어 드러낸다.


나같으면 박범신처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서지우를 이적요의 제자답게(시인이 소설가 제자를 둔 것과, 그 제자에게 소설을 써주는 상황도 좀 이상하다) 시인으로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발표한 작품도 '은교'라는 시였을 것이다. 작가 박범신 또한 그러고 싶었겠지만, 그가 가슴 속에 품은 헌화가의 떨림을 담은 '은교'라는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곳곳에 이적요의 시와 서지우의 시가 교차되어 흘러나오고, 결정적인 순간에 헌화가의 변주로 현대적 감수성을 붙드는 '은교'라는 시가 흘러나왔다면, 이 스토리는 완벽하게 수로부인의 재탄생이 되었을 텐데...휴우, 욕심이 과한가. 여하튼 스토리텔링이 뭔지를 말해주는, 흥분되는 영화였다.


[빈섬의 알바시네]12. '은교', 사랑은 늙는 법이 없다 영화 '은교'의 한장면


'빈섬의 알바시네' 전체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2.1211:20
    양천구 33평 24억 아파트 21억까지 떨어져…매물 풀리고 호가 하락
    양천구 33평 24억 아파트 21억까지 떨어져…매물 풀리고 호가 하락

    "인근 신축 아파트 33평(전용면적 84㎡)이 전에는 24억원에 호가가 형성됐어요. 그런데 양도세 중과 발표가 나오고 21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왔고 이젠 21억원에라도 팔겠다고 하네요."(서울 양천구 신정동 A공인)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방침이 확정된 이후 시장에선 체감할 만큼 다주택자 매물이 풀리고 있다. 수억원씩 호가를 낮춰 내놓거나 세입자가 있어 당장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엔 위로금 명목의 웃돈을 주고 매각하

  • 26.02.1211:00
    2월 주택사업자 경기 전망 대폭 개선…"수도권 중심 가격 상승 기대"
    2월 주택사업자 경기 전망 대폭 개선…"수도권 중심 가격 상승 기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택 매매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주택사업자들의 경기 전망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월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전월 대비 15.3포인트 상승한 95.8로 집계됐다고 12일 밝혔다. 수도권의 경우 11.9포인트 올라 107.3으로, 비수도권은 16.0포인트 상승한 93.3으로 전망됐다. 해당 지수가 기준선인 100을 넘으면 주택사업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 26.02.1107:00
    "국가가 부동산 개발 판 깔았다"…1·29 대책에 업계 '새 사업 검토'
    "국가가 부동산 개발 판 깔았다"…1·29 대책에 업계 '새 사업 검토'

    정부의 1·29 도심 주택공급 대책에 부동산개발업계가 새 사업 검토로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공공 유휴부지 10여곳과 노후청사 34개소 위치 및 착공 일정을 공개하자 인근 민간 유휴부지까지 개발 동력이 생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까지 악성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리에 묶여 있던 업계가 올해를 기점으로 규모 검토와 사업성 분석에 나서고 있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규모 검토 이미 시작…PF사태

  • 26.02.0713:56
    다음 주 3492가구 공급 예정…1분기 서울 분양 2002년 이후 최다
    다음 주 3492가구 공급 예정…1분기 서울 분양 2002년 이후 최다

    다음 주에는 전국 2개 단지서 총 3492가구가 공급된다. 7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2월 둘째 주에는 전국 2개 단지 총 3492가구(일반분양 901가구)가 공급된다. 이는 전주 1194가구와 비교할 때 2298가구 늘어난 수치다. 단지별로 인천 남동구 간석동 '포레나더샵인천시청역'과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e편한세상센텀하이베뉴'에서 청약을 진행한다. 포레나더샵인천시청역은 지하 4층에서 지상 최고 35층, 총 24개동, 전용면적 39∼84

  • 26.01.2411:40
    다음 주 줄어든 물량…전국 3개 단지서 184가구 분양
    다음 주 줄어든 물량…전국 3개 단지서 184가구 분양

    1월 넷째주 분양 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전국 3개 단지서 총 184가구가 분양에 돌입한다. 24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1월 넷째 주에는 전국 3개 단지 총 184가구(일반분양 156가구)가 공급된다. 이는 전주 3260가구와 비교할 때 3076가구 줄어든 수치다. 다음 주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형남아파트6차', 경기 김포시 양촌읍 '여기가(장애인자립특화형공공임대)' 등에서 청약을 진행한다. 형남아파트6차는 지하 1층∼지상 최고 8층

  • 26.02.0307:05
    전문가 4인이 말하는 '의료 생태계의 대전환'[비대면진료의 미래⑥]
    전문가 4인이 말하는 '의료 생태계의 대전환'[비대면진료의 미래⑥]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4
    벼랑 끝에 선 '닥터나우 방지법'…플랫폼 규제 해법은?
    벼랑 끝에 선 '닥터나우 방지법'…플랫폼 규제 해법은?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3
    탈모·여드름 치료제만 급증…'처방전 자판기' 막으려면
    탈모·여드름 치료제만 급증…'처방전 자판기' 막으려면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2
    "집에서 진료받고 약 배송은 불가?"…'반쪽짜리' 제도
    "집에서 진료받고 약 배송은 불가?"…'반쪽짜리' 제도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1
    "환자 편의 높이되 더 안전하게"…하위법령 논의 착수
    "환자 편의 높이되 더 안전하게"…하위법령 논의 착수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511:23
    박원석 "전한길, 이석기보다 훨씬 더 위험"
    박원석 "전한길, 이석기보다 훨씬 더 위험"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박원석 전 국회의원(2월4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박원석 전 의원과 함께 여러 가지 이슈들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원석 : 네, 안녕하십니까. 소종섭 : 오늘 장

  • 26.02.0314:25
    장성철 "한동훈의 알파와 오메가는 배지"
    장성철 "한동훈의 알파와 오메가는 배지"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2월 2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과 함께 여러 가지 이슈들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정치, 지난주 토요일부터 오늘 오전까지 9개를 올렸습니다.

  • 26.01.2907:47
    정청래 비판한 김민석, 치열한 두 사람의 '장군멍군'
    정청래 비판한 김민석, 치열한 두 사람의 '장군멍군'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군멍군'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올 8월 전당대회를 향한 움직임이다. '8월 전대'는 누가 당 대표가 되느냐를 넘어 여권의 권력 지형을 가르는 의미가 있다.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그의 정치적 힘은 지금보다 더 커진다. 여권 내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다. 2028년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권을 쥐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표가 된다면

  • 26.01.2811:24
    이언주 "합당은 선거에 악재, 정 대표 행동 용서받기 어려워"
    이언주 "합당은 선거에 악재, 정 대표 행동 용서받기 어려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긴장감이 높아가는 흐름이다. '명청대전'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최고위원회에서 직접 언쟁을 주고받았다. 일부 최고위원들이 회의에 불참하는 일도 벌어졌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세력 격돌이 서서히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그 한가운데 있다. 최근 이 수석최고위원과 두 차례 인터뷰했다. 지난 21일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해 1시간 인터뷰했고, 27일엔 전화

  • 26.01.2611:31
    윤희석 "오세훈 프레임 바꿔야", 서용주 "정원오 재료 좋아"
    윤희석 "오세훈 프레임 바꿔야", 서용주 "정원오 재료 좋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서용주 맥정치사회연구소장,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22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님과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 두 분 모시고 최근 여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