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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라' 교육이 죽인, 세월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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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안교육 전문가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초청강연 "순종만 강요해온 길들이기 학교…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질 힘 길러줘야"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어떤 사회든지 아이들이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환경이나 사회적 '통제'에 놓이게 되면 성인이 돼서도 자유를 원치 않게 됩니다."


지난달 25일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미국의 대안교육 전문가인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한국을 방문해,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일정 중 첫 번째 강연의 문을 연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사회, 아이들의 야생성을 어떻게 되살려줄까'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이번 강연에서 크리스는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큰 슬픔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사람 대부분이 학생과 교사들이었다는 데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선내에서 '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교사와 학생들이 따랐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여러분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미국 사람으로서 내 생각을 이야기해도 될지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전날 세월호 100일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가 검은색 추모 리본 타투를 팔뚝에 새긴 크리스는 이번 사고를 통해 '왜 인간이 권위에 도전하기보다는 순종하게 되는지'에 대한 오랜 고민을 다시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차단되면, 성장해서도 외부의 권위에 기대 안정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든 권위주의적 사고는 자신의 뿌리를 자기 자신 '밖'에 둘 때 발생한다며 그는 논의를 확장시켰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에게는 성인이 됐을 때 둘 중 하나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권력을 끌어모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죠. 이것은 파시즘 사회의 주재료입니다."


그는 이 엄청난 비극으로부터 한국 사회에 수많은 변화가 필요함이 인식됐다면, 교육도 그 요구를 수용하는 데서 예외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가 이번에 펴낸 '길들여진 아이들'이라는 책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예컨대 한국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배움의 과정이 주로 '지시'를 통해 이뤄지고 그 보상은 '성적'으로 받게 된다는 점을 그는 지적했다. 배움의 동기가 '앎'의 흥미진진함 자체가 아니라 '나는 다른 애들보다 똑똑하다'는 보상, 즉 남들의 기대라는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없이 통제되기를 반복합니다. 시들어가는 야성을 외면하고 겨우겨우 어른이 되면 '학습된 무기력', 즉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도 우울증이 전염병처럼 20·30대에 번지고 있죠."


그는 과거에 자신의 제자가 졸업식에서 발표한 송사 한 편을 소개했다. 그 제자는 학교에 입학할 당시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에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 역시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졸업 송사에서 "학교에서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나의 페이스에 맞는 과정을 밟고,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방법, 또 남의 의견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살지는 모르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어떤 난관이 찾아오더라도 내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크리스는 여기서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이 학생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외부에 통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외부 환경을 통제해야 하는 기회에 놓이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는 자신감 속에 졸업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강연에 이어 청중의 질문이 이어졌다. 크리스의 주장처럼 아이들 내면의 야성을 지켜주는 일과 아이들의 나쁜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 사이에 딜레마가 있다는 호소가 많았다. 이에 대해 그는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욕은 아니다"며 "아이들과 '교섭'에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 붕괴' '공교육의 붕괴'가 거론되는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질문도 많았다. 크리스는 기본적으로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생에게 책임도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운영되기 위한 의사결정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른들이 나를 믿는다'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책임감이 바로 자신감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탐색할 겨를을 주지 않고 학업에만 몰두하게끔 강제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두가 최상위권을 향해 달려가려고 하는 건 '목적이 없는 경주'라고 말했다.


"결국 '학교'가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줄 세워놓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안이나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나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라' 교육이 죽인, 세월호 아이들 美 대안교육 전문가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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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미국의 대표적인 대안학교 가운데 하나인 알바니프리스쿨에서 19세 때 자원활동을 시작해 40여년간 아이들과 함께하다 지금은 그간의 교육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살아 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등이 있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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