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해서 좀처럼 시도할 마음이 들지 않지만 막상 해 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들이 꽤 있다. 그런 일을 해냈을 때는 작은 깨달음마저 덤으로 안겨주는데 지난주 휴가 때 집의 세면대와 하수구를 직접 고치면서 경험했던 것이 그런 '개안'이었다.
세면대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을 직접 고쳐보겠다며 몇 달을 끌다가 드디어 새 걸로 바꿔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을 자축하며 세면대에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뿌듯하게 지켜볼 새도 없이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부터 배수가 시원찮았던 욕실 하수구가 완전히 막혀 물이 아예 빠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뜻밖의 난관 앞에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감, 그리고 수도꼭지를 이미 스스로 수리한 데서 얻은 자신감이 내 머리와 팔을 '선동'했다.
세면대를 통째로 들어내고 하수구 덮개를 해체한 다음 구멍을 막고 있는 이물질들을 처리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으나 1시간여 씨름한 끝에 결국 해냈다. 나는 욕실 바닥의 물이 시원하게 하수구 안으로 빠지는 것을 보면서 나의 '능력'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그 물과 함께 씻어내려가는 듯했다.
한편 다음 순간 찾아온 것은 지난 5년간 살았던 집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아니 지금껏 내가 거쳐갔던 그 많은 집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추궁이었다.
그러므로 그 순간 내 몸을 범벅으로 만들었던 땀은 집에 깃든 성령이 베풀어준, 집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라는 세례였다. 그 세례로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욕실에 드나들 때, 세면대의 물을 틀면서, 바닥의 물이 빠져 나갈 때 그걸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지는 그 날 이전과 이후로 바뀐 듯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아마도 진정한 '가장(家長)', 그러니까 아내와 아이들만이 아니라 집을 움직이는 만물이 함께 동거하는 집의 진짜 가장이 되는 데 조금은 더 다가섰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집의 어딘가가 망가질 때, 당신의 가족의 일부, 말하지 못하는 동거인이 보내는 고통의 호소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외부의 도움을 빌리기 전에 직접 가족의 상처를 고쳐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내 경험이 입증해준다. 좀 호기를 부려 얘기하자면, 200년 전 프랑스의 키 작은 영웅의 말처럼 '먼저 전투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