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순위에 무섭게 치고 들어온 작품이 있다. 지난 2일 개봉한 작품 '소녀괴담'(감독 오인천)이다. 강원도의 한 학교로 전학을 온 남학생과 소녀귀신의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에서 유독 눈에 띄는 캐릭터가 있다. 학교 일진 현지다.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현지는 배우 한혜린이 분했다. 연이은 호평으로 화제가 된 배우 한혜린을 4일 충무로에서 아시아경제가 만났다.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빛나는 외모가 감춰지진 않았다. 편안한 옷차림만큼이나 그녀와의 대화 역시 편안했다. 한혜린은 배우답게 영화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요. '소녀괴담'에서는 '현지'라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현지가 학생이고 일진이라는 표면적인 정보보다 '왜 이렇게 행동할까?'라던지 '현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공포영화는 톱 여배우들의 등용문'이라는 말이 있다. '여고괴담'에는 최강희와 박진희가 있었고 '여고괴담2'에는 박예진, 공효진이 있었으며 '여우계단'엔 박한별, 송지효가 있었다. 한혜린 역시 공포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하며 이런 점을 염두에 뒀던 걸까.
"원래 공포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또 '소녀괴담'을 촬영하면서 이 작품이 '공포물이다'라는 식으로 장르를 따지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저 캐릭터를 봤죠. 많은 분들이 '일진 연기'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사실 '일진 연기'라는 건 없거든요. 여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 시작했고, 캐릭터를 표현하고 풀어내는 데 신경 썼던 거 같아요"
한혜린은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에서 부잣집 외동딸로 분하며 지는 걸 싫어하는 고집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번 '소녀괴담'에서도 성깔 있는 일진 현지역을 맡았다. 이미지가 쌓이다보면 굳어지는 법. 하지만 기자가 만난 한혜린은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작품에서 얻어진 이미지에 대해 불만은 없는지 물었다.
"아무래도 시청자나 관객 분들은 캐릭터의 이미지로 저를 기억하시는 거 같아요. 하지만 배우는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고 가볍게 지나쳐야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평가절하될 수도 있지만 더 좋게 봐주시기도 하시고, 앞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드릴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정말 캐릭터 이름으로 많이 기억을 해주시는 거 보고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럼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한혜린은 어떤 이미지의 캐릭터들을 연기하게 될까? 더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싶을까,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청순한 연기를 바라고 있을까. 한혜린은 망설임 없이 "둘 다"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게, 맡는 배역에 따라 삶의 템포가 바뀌는 거 같아요. 놀이동산에 가면 회전목마도 있고 롤러코스터도 있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템포와 다양한 심장박동을 일으키는 놀이기구가 있듯, 저에게 캐릭터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새 캐릭터는 새로운 옷이나 새로운 향기, 새로운 색깔 같은 거죠. 그래서 좀 더 강한 것도 해보고 싶고 잔잔한 것도 해보고 싶네요"
배우 한혜린의 내면적 깊이가 인터뷰를 할수록 빛을 발했다. 마치 어릴 적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품고 한 길에만 매진해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 같은 느낌. 하지만 한혜린은 연기를 다른 사람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래들에 비해 연예계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었다고 한다.
"타의적으로 연기를 시작해서 저는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저를 더 다그쳐서 더 열심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죠.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런 맥락 위에 있어요. 정말 제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고 싶은 거죠. 직접 입어봐야 제게 잘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거잖아요"
한혜린의 진솔한 매력에 빠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무리를 위해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한혜린에게 '소녀괴담'에 대해 물었다.
"'소녀괴담'은 공포영화긴 하지만 이전 작품들보다 더 담백한 거 같아요. 드라마에 집중한 작품이죠. 그래서 좋았어요. 뉴스도 그렇고 요새 자극적인 게 너무 많잖아요. 영화관에서까지 굳이 스트레스를 드리기보다 담백한 즐거움을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공포영화 매니아분들께는 아쉽다는 소리를 들어요. 하지만 원래 공포영화를 안 보시는 분들에게는 그만큼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시부터 자기계발서까지 폭넓은 독서를 즐긴다는 그녀는 외향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반전매력을 지닌 배우였다. 관객을 매료시키는 그녀의 연기력은 이런 깊이 있는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게 분명해보였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배우 한혜린이 보여준 진솔한 모습은 그동안의 작품만으론 상상할 수 없던 것이었기에, 앞으로 그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아직 그녀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관객들은 곧장 영화관으로 가서 '소녀괴담' 티켓을 끊길 바란다.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사진 정준영 기자 jj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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