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무적함대’ 스페인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월드컵 2연속 우승에 도전했지만 조별리그 성적 1승 2패(승점 3점·골득실 -3 / B조 3위)로 탈락했다.
지난 14일(한국시간) 사우바도르 아레나 폰치 노바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5로 완패하더니 19일 리우데자네이루 에스타디오 두 마라카낭에서 열린 칠레와의 2차전에도 0-2로 무릎을 꿇었다.
16강 진출 실패가 확정된 뒤 24일 쿠리치바 아레나 데 바이샤다에서 열린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3-0으로 이겨 체면치레를 했다. 역대 월드컵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는 총 네 차례(1950년·2010년 이탈리아, 1966년 브라질, 2002년 프랑스). 스페인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의 다섯 번째 희생양이 됐다.
스페인은 이른바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다’라는 뜻)’를 앞세워 2000년대 후반 전 세계를 호령했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가운데 높은 점유율 축구로 유리한 경기를 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0)와 사이 에르난데스(34)와 같이 높은 패스성공률을 자랑하는 선수들로 미드필드 싸움을 장악했고, 이 패스를 골로 만들어줄 다비드 비야(33), 페르난도 토레스(30) 같은 공격수도 있었다.
상대팀들은 스페인의 일방적인 점유율 축구에 이렇다 할 공격 한 번 못해보고 경기를 마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스페인은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2012년 유럽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하며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 1위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수비진은 물론 중원과 공격진에서의 압박이 강조되는 최근 축구에서 티키타카와 점유율 축구는 설 자리를 잃었다. 위쪽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압박 축구에 공간을 활용한 창의적인 패스는 종적을 감췄고, 점유율 확보를 위한 패스만이 이뤄졌다.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점유율 64%와 패스성공률 87%, 칠레와의 경기에서 점유율 63%와 패스성공률 83%를 기록하고도 한 골밖에 넣지 못하고 완패한 건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한다.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63)도 칠레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이번 월드컵에서 보인 경기력은 실망스럽고 (조별리그에서) 떨어질 만했다”며 “그 동안 보여줬던 것 이상을 전혀 해내지 못했다”고 했다.
또 하나는 변화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보스케 감독은 새로운 선수와 새로운 전략을 내놓기보다 기존의 스페인 축구를 고수했다. 이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는 “스페인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현재 스페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 스물세 명 가운데 열 명은 2008년 유럽선수권 당시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눈에 띄는 변화라면 공격수 부재를 해결하고자 브라질 출신의 디에고 코스타(26)를 서둘러 귀화시킨 것 뿐이었다.
변화를 주저하는 사이 상대팀들의 분석은 더욱 치밀해졌고, 스페인의 창은 무뎌졌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 골키퍼를 지낸 산티아고 카니자레스(45)는 “기존의 선수들이 다시 대표팀 주축이 되면서 고령화와 전력노출이 동시에 나타났다”며 “월드컵 전에 세대교체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이 일찌감치 짐을 싼 B조에서는 네덜란드와 칠레가 16강에 올랐다.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칠레는 오는 29일 오전 1시 벨루오리존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A조 1위 브라질을 만나고, 조 1위 네덜란드는 이튿날 오전 1시 포르탈레자 에스타디오 카스텔랑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8강행을 겨룬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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