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 단속 강화하자 '사각지대' 증권사로 몰려
미래에셋·동양 등 7곳서 대포통장 발급율 7% 급증
[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 지난 주말 노모씨 명의의 미래에셋증권 계좌에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뭉칫돈이 입금됐다. 은행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 과정에 개인정보를 빼가는 '파밍(Pharming)' 사기로 돈이 입금된 것이다. 사기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들이 은행과 경찰에 신고를 끝냈을 때 이미 사기범들은 중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모두 돈을 출금해간 뒤였다. 해당 계좌는 현재는 지급이 정지된 상태다.
20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대포통장 점유율이 폭증하고 있다. 지난 1분기 0.9%였던 점유율이 지난 5월1일부터 16일까지 7.1%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미래에셋증권과 동양증권을 포함해 수신기능을 갖춘 대형 증권사 7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형 시중은행들이 3∼4%의 점유율을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증권사 점유율 7.1%는 대단히 높은 수치"라며 "농협은행과 새마을금고, 우체국 등 그동안 대포통장 비중이 높았던 금융사가 대대적인 근절운동을 벌이면서 사기범들이 증권사로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농협은행의 대포통장 점유율은 지난 1월 21.4%, 2월 21.3%, 3월 20%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파밍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 5만여개 중 66%가 농협은행(단위농협 포함) 계좌로 발표되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우체국과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상반기 각각 1.5%, 2.4%에 머물던 발급 비중이 3월에는 14.9%, 8.6%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해당 금융사들이 대포통장 발급을 막기 위해 신규 통장 발급 시 금융거래목적확인서와 증빙서류 제출 등을 의무화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자 금융사기범들이 증권사에서 대포통장을 발급받기 시작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발급률이 높은 은행과 제2금융권 위주로 발급현황을 점검하면서 증권사가 대포통장 단속의 '사각지대'가 된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지금까지는 은행과 새마을금고, 우체국 등을 위주로 대포통장 단속을 진행해 왔고 증권사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수신기능을 갖춘 곳 중 금융당국의 단속망을 벗어난 곳은 사실상 증권사밖에 없어 대포통장 발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업황이 악화되면서 증권사들이 고객확보에 안간힘을 쏟는 것도 대포통장 발급률을 높일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몇몇 증권사에서는 매달 일정금액 이상 자금을 유치하지 못하면 연봉을 삭감하는 강경책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 직원은 "대형 증권사들이 대규모 인원감축을 실시하는 등 업황 악화로 성과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며 "계좌 발급을 위한 절차는 당연히 갖추고 있지만 타 금융권에 비해 그리 까다롭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향후 대형증권사는 물론, 중·소형 증권사까지 대포통장 발급을 점검해 나갈 방침이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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