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다…최후의 인양대상은 '民主主義'다
지난달 6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다녀오는 길, 슬픔과 눈물에 잠긴 비극의 현장을 뒤로하고 나올 때 버스 창 밖으로 전봇대에 붙은 표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안보가 튼튼한 나라, 행복한 대한민국!'
구호 아래에는 간첩과 불순분자를 신고하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백명의 아까운 생명들이 눈 앞에서 수장당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끔찍한 참사의 현장에 붙어 있는 이 구호 속에 대한민국 안보의 현실, 공허한 안보의 현실이 들어 있었다.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비극의 땅, 그 땅에서 튼튼한 안보를 외치는 이 구호는 '안전한 나라'란 과연 어떤 나라인지를 심각하게 물어보게 했다.
◆인간 안보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안전의 토대와 기본이 매우 부실하며 허약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른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편협한 인식과 이해가 안전 불안을 낳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무능한 대응에 국민들의 분노가 쏟아질 때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말했다가 경질됐다. 대한민국 '안보' 실장의 머릿속 안보에는 재난으로부터의 국민의 안전은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안보는 남북간 등 나라간 갈등이었을 뿐이다. 바로 이것에 안전에 무력한 대한민국의 실상이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참사로 키운 과정에서 국가의 안전에 국민의 안전이 없었고, 정부에 정부가 없었으며 공공에 공공이 없었던 현실이 이 말 속에 집약돼 있었다.
김 실장과 정부에는 '인간 안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안보가 전통적인 안보 개념을 넘어서서 새로운 안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다. 국가와 군사를 중심으로 했던 전통적인 안보 개념은 이제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 삶의 방식을 보호하는 '포괄적인 안보'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이 포괄적 안보의 핵심이 '인간안보'(human security)다.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된 '인간안보'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적용되고 있다.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국가안보라고 할 때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안전은 안보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초대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
사실 이 같은 '안보'에 대한 이런 인식은 이미 참여정부 때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정권으로 바뀌면서 안보 개념은 다시 전통적인 군사안보 개념으로 되돌아갔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국가안보실을 만들면서 안보는 전통적 안보로 완전히 회귀했다. 인간안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김장수 전 실장의 발언은 이 같은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것이 그의 확고한 소신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안보와 안전을 따로 본 그 소신이 인간안보적 상황에 대한 무능한 대처로 나타났던 것이다.
◆한국은 초위험사회
1986년 저서 '위험 사회(Risk Society)'에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따른 불안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경고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세월호 참사 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를 '특별히 위험한 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압축적인 근대화를 겪으면서 위험사회가 됐다. 유럽이 150년에 걸쳐서 이룬 근대화를 한국은 15~20년 만에 근대화를 이뤄내면서 너무나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위험 요소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위험에 대한 총체적인 안전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특히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정부의 존재다. 세월호 사고가 보여줬던 건 국민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가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전시스템이 '유능한' 정부만으로 갖춰지지는 않는다.
또 다른 어느 한 분야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6ㆍ4 지방선거에서는 '안전 선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거 유세기간 내내 안전 공약이 쏟아졌다. 거의 모든 후보가 안전 공약을 내세웠다. '지하철 안전', '지하철 노후차량 전면 교체', '생명안전망ㆍ재난안전망 구축', '안전일등 ㆍ생명존중', '안전보장회의 설치' 등의 공약이 쏟아졌다. 이 같은 안전에 대한 관심은 공약(空約)이니 재원 뒷받침 없는 부실한 약속이니 하는 지적을 받았지만 우리 사회가 안전에 관심을 높인 점에서 일단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총체적인 안전 시스템은 첨단장비의 도입이나 안전 관련 기구의 설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 요소는 사회 곳곳에, 다양한 양상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분야의 대응으로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재난 발생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며, 재난으로부터 교휸을 얻어 다시는 유사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어느 한 분야, 어느 한 기구의 책임과 역할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범사회적인 위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안전의 기초는 민주주의
범사회적인 위험 대처 시스템, 안전 시스템의 핵심에 민주주의가 있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 인도의 후생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재난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나라라도 자연 재해 등으로 흉작이 발생해 기근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대규모 아사자는 오로지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는 나라에 한정된다. 즉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것은 그 문제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정부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우선 기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극빈층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센이 설파한 기아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곧 안전과 민주주의의 관계이기도 하다. 기아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의 근원에는 민주주의의 부재가 있다. 민주주의가 안전의 보루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야말로 궁극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갖는 자발성이 능동성을 낳고 능동성이 효율성을 낳는다. 그럼으로써 사회 전체적인 안전도의 제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넓고 더 깊은 민주주의, 더 미세한 민주주의, 더 실질적인 민주주의다. 민주적인 정치, 민주적인 정부, 민주적인 시스템, 그리고 승객들을 버리고 배를 떠난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처럼 이기적인 개인들이 아닌 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갖춘 민주적 시민, 책임감 있는 개인들이 필요하다.
더 많은 민주주의, 그것이 안전의 기초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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