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 귀빈 여러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1945년에 태어나신 분들을 ‘해방둥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합니다.
8.15 해방이 우리 한민족에게 크나큰 기쁨이었지만,
8.15 직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비극도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1945년 ‘해방둥이’ 어르신들이
칠순잔치를 하게 된 현재,
우리 한반도는 분단된 상태로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분단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이산가족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들의 안부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이산가족 중
3800여명이 돌아가셨습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분단으로 상처받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덜기 위해서라도,
너무나도 간절한 통일로의 염원은
반드시 달성해야할 우리들의 책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우리 한민족에게 통일은
민족적·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너무도 크고 명확한 당위성을 갖는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한민족에게,
통일이 민족적·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절박한 시대적 사명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압축고도성장을 달성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6~7%에서 최근 3%후반까지 하락하였습니다.
뜨거웠던 성장엔진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가상승률과 출산율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진 청년들의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등 고용여건도 녹록치 않은 상황입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인구 고령화 추세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2014년의 한국경제는
저성장·저물가·저고용·저출산 그리고 고령화라는
4低1高의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힘차게 도약하기 위한
퀀텀점프(Quantum jump)의 모멘텀을 찾지 못한다면
분단시대를 살며 뜨겁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우리의 영광은 모두 과거사가 될 뿐입니다.
따라서 한국경제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은,
한국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단숨에 극복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약 25년 전 TV를 통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국제정세가 동서독 통일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 냉전시대의 산물인 분단,
그 분단의 종결은 이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통일은
지금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나
언제 어떻게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동서독 통일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약 1년 만에 통일조약을 체결한 독일은,
통일의 기쁨은 잠시였고
그 후유증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통일 직후부터 동서독 체제 간 이질성에 따른
사회적 갈등, 동서독 불균형 발전 등으로
통일 이후 15년간
기나긴 경기둔화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중반에 이르자
통일의 긍정적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합니다.
체제안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경제도 안정적인 회복세를 되찾았고,
실업률이 상당히 낮아지면서
정치적 안정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통일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순조롭게 극복할 수 있었고,
경제 대국으로서 위상을 되찾으며
이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통일 독일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제고되었습니다.
안보비용 감소 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해외 파병 등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외교적 노력이 한층 강화되었고,
그 결과 독일은 전범국 지위에서 벗어나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안보 공여국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에 비례하여 국제기구 지원을 확대하면서,
UN재정 기여도 역시 세계 3위 수준에 이르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도 높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일독일의 모습은,
통일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무거운 시대적 사명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 사회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논의를 보다 긍정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해 나가자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한반도 통일관련 논의들은,
통일에 수반되는 비용이 얼마인지에
지나치게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통일세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의 논의들은
통일 부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귀결되어
오히려 통일을 기피하는 현상만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이 컸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따라서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인 측면을 더욱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만약 한반도 통일이 달성된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경제적 이득이 생기는 것일까요?
첫째, 한반도 통일은
대규모의 총수요를 창출하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경제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우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로
북한경제 성장지원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전례 없는 대규모의 총수요 창출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남북한 통일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산업구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입니다.
북한의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있는 풍부한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기술력이 결합될 경우,
특정 산업의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등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최대 생산기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정부재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남북의 대치상황이 해소된다면
현재 GDP 대비 2.5%에 달하는 국방비를 포함한
막대한 분단유지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절감된 정부재원을 사회복지에 활용한다면,
통일에 따른 사회적 갈등 치유가
예상보다 빨리 추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북한의 넓은 국토나 풍부한 지하자원도
한반도 통일의 간과할 수 없는 편익입니다.
남북사회통합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지하자원은 6,900조 원에 이르며,
이는 남한의 25배에 달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기술력 부족 등으로 개발되지 못한
북한의 다양한 지하자원 개발은,
해외자원 수입 대체효과는 물론
오히려 자원 수출국으로의 전환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라는
무형의, 그러나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통일의 긍정적 효과입니다.
분단대치 상황이 해소되는 순간
그동안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상당 수준 일거에 해소될 것입니다.
이는 국제시장에서의 자금조달비용이 감소되는 등
우리 경제여건의 획기적 개선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이처럼 한반도 통일은 우리에게 유형·무형의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세계 유수의 기관, 저명인사의 견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도 한반도 통일시,
2050년 한국의 개인소득이 9만 달러를 넘어,
미국에 이어 2번째 부국이 된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퀀텀펀드의 창시자 짐 로저스도
최근 한반도 통일에 대해 낙관하며
‘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물론 지나친 낙관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실례로 1990년 초 동서독 통일당시와 비교해보면,
현재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통일 당시 동서독에 비해 매우 크고
기존의 남북한 경제협력·원조규모도 미미한 상황입니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의 1인당 국민 소득은 동독의 2배 수준이었지만,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북한의 18배에 이릅니다.
서독의 명목 GNI는 동독의 8배 수준이었으나,
현재 한국의 명목 GNI는
북한의 38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동독 및 북한에 대한 지원규모 측면에서도,
서독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연평균 약 2조 원을 동독에 지원했던 반면,
한국의 지원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약 141억 원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양국의 경제력 격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통일에 수반되는 비용이 클 수 있다는
우려를 낳습니다.
이처럼 동서독의 통일 여건과 비교해 볼 때,
한반도의 통일 환경이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은
면밀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통일이 쉬운 과제는 아니나, 통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하나 준비해 나갈 것’
이라며 통일의지를 밝히신 바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으며,
동 위원회는 한반도 통일을 대비하는
컨트롤 타워로서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정부방침에 부응하여,
금융위원회도 한반도 통일을 대비한
주요 금융정책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준비해 나갈 계획입니다.
통일준비 과정에서 금융이 갖는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금융부문이 통일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총아’라 불리는 금융은,
자금이 풍부한 곳에서 부족한 부분으로 흐르도록
매개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최대 강점인 ‘시장을 통한 효율적 자원배분’의 근간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은 경제체제가 상이한 두 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인 만큼,
금융시스템이 북한 경제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정착하느냐가
통일한국 성패의 시금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경제력 격차를 조속히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금융의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통일한국의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많은 분들은
“통일이 되면 화폐는 어느 화폐를 쓰는 것이냐?”
라는 의문을 떠올릴 것입니다.
현재 북한은 조선중앙은행이
중앙은행기능과 상업은행기능을 모두 담당하며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원활한 체제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조선중앙은행으로부터
상업은행기능을 분리하는 한편,
통일초기에는 남북이 각자의 화폐를 사용하다
북한의 화폐가치가 시장에서 적정하게 평가되는 시점에서
남북한 중앙은행을 통합하여
단일화폐로의 통합을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북한의 환율은 어떻게 결정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도 필요합니다.
현재 북한의 환율은 고정환율제도에 따라 결정되지만,
현실에서는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이 괴리된 이중구조입니다.
즉, 실질적으로는 고정환율제도라고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남북이 통합될 경우, 우선 북한내
단일한 환율이 통용되도록 하여
남북의 화폐가 일정한 비율관계를
안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단기간 내 북한의 대외부채 정리, 물가불안 가능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며
경제통합의 속도에 맞추어 환율제도를 단일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 내부에 시장경제에 적합한 금융 인프라를 설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재 북한은 조선중앙은행이
통화의 발행과 자금의 배분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중앙은행이 실물경제계획에 따라
자금 공급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작동되는 장단기 금융시장이나
상업은행 등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경제 내 자금수급을 담당할 금융기관과 직접금융시장을 조기에 육성·안착시켜야 할 것이며,
이에 보조를 맞추어
예금보험제도, 지급결제제도, 주식상장제도 등 시장경제에 걸맞은 금융 인프라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통일 대비를 위해 금융이 해야 할
또 하나의 막중한 임무는, 북한 재건지원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해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 경제의 재건지원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은
여러 가지 방식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조세수입 및 국채발행을 확대하고
지출항목을 구조조정하는 등 재정을 활용하는 방안,
기존의 남북협력기금 등 투자기금을 조성·활용하는 방안,
국제기구 가입을 통해 양허성 자금 등
국제금융기구 자금을 유치하는 방안,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민간자본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식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남북간 경제력 격차가 지나치게 크고
그 격차가 빠르게 축소되지 못한다면,
이는 남북한 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즉,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다양한 금융지원 방안 마련이
통일의 성패를 가를 핵심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금융위원회는 통일부·기재부 등 관련 부처와
정책금융기관, 학계, 전문가 그룹 등이 대거 참여하는
민관합동 「통일금융 테스크 포스」를 구성하여
오늘 오후 첫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
통일금융 테스크 포스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테마를 중심으로,
주요 체재이행국가들의 사례와,
북한 경제·금융제도 등을 분석하고,
통일과정에서의 금융의 역할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획입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남북의 분단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민족적·인도주의적 통일의 열망이 예전 같지 않고,
통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은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는 꿈꾸고 준비하는 자의 몫입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앞당기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외 귀빈 여러분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할 시대적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포럼을 통해 통일 한국의 미래를 위한
발전적인 제언이 풍부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끝으로, 내외 귀빈 여러분과 서울아시아금융포럼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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