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생명보험사들이 자살 재해사망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약관에는 자살시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해놓고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해 온 것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생명보험업계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건을 조사한 결과, ING생명 뿐만 아니라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거의 모든 생보사가 똑같은 문제를 가진 것으로 파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미지급은 ING생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1~2개를 뺀 모든 생보사가 관련돼 있다"면서 "이는 생보업계가 과거에 잘못된 약관을 복사해 쓴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8월 ING생명을 검사한 결과, 재해사망특약 2년 후 자살한 90여건에 대한 200억원의 보험금(2003~2010년)을 미지급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금감원은 다른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나섰고, 다른 생명보험사들도 ING생명과 같은 상황인 점을 파악했다.
생명보험의 경우 자살면책 기간 2년을 넘긴 고객이 자살하면 일반사망으로 보고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2010년 4월 표준약관 개정 이전 ING생명을 포함해 대부분의 보험사는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 준다고 명시한 뒤 일반사망금을 지급해왔다. 이들 보험사는 표기 실수일 뿐 자살은 재해가 아니므로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2010년 자살시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한다고 약관을 변경했다"면서 "2000년 초반에 생보사들이 종신보험 표준약관을 만들 때 실수로 잘못 설계된 부분이 있으나 자살이 재해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감원이 적발한 미지급 자살 재해사망보험금만 수천억원에 달하며 앞으로 조 단위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잘못된 약관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맞지만, 자살 조장 등 사회적 분위기를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어 계약자와 보험사를 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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