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낱말의 습격] 故이순신?(2)

시계아이콘01분 52초 소요

[낱말의 습격] 故이순신?(2) 낱말의 습격(2)
AD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죽은 사람이고, 소수의 산 사람들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었다. 아는 사람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산 사람 이름은 곧 동나지만 죽은 사람 이름은 끝없이 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 얘기다.

최진실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린 고(故) 최진실씨라고 말한다. 정주영회장을 말할 때, 고(故) 정주영씨라고 말한다. 고(故)는 이름만 쓰지 않고 반드시 뒤에 존칭이나 예칭(禮稱)의 표현을 붙인다. 왜 그럴까. 망자(亡者)는 모든 산 사람의 선배이니, 쉽게 불러서는 안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같은 망자인데도 좀 오래되어 보이는 사람에겐 고(故) 자를 안붙인다. 고(故) 이태백씨, 고(故) 세종대왕, 고(故) 이순신씨, 고(故) 유관순씨. 좀 웃긴다. 그런데 이승만대통령에는 고(故) 이승만씨라고 쓴다. 유관순보다 이승만이 27년 연상이다. 그런데도 고(故)자를 붙일 수 있는 건, 이승만이다. 이건 왜 그런가. 죽은 자의 끗발은 죽는 날부터 발생하기 때문인가. 과연, 유관순은 이승만보다 45년전에 죽었다. 유관순은 겨우 18년 살았고 이승만은 90년 살았다.

그렇다면 고(故)는 죽은 때를 따져서 붙이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유관순은 1920년에 돌아갔지만 안중근의사는 1910년에 돌아갔다. 유관순에게는 고(故) 유관순누나라고 말하지 않지만, 안중근에게는 고(故) 안중근의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건 왤까? 살았던 나이가 주는 무게가 작동한 까닭일 것이다. 안중근은 돌아갔을 때 31세였고 유관순은 18세였다. 어린 친구에게는 고(故)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작용한 것이다. 7살바기 최샛별이 죽었는데 고(故) 최샛별이라고 잘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의 김일성(1912-1994)은 유관순보다 늦게 태어나고 유관순보다 늦게 돌아갔지만 고(故) 김일성씨라고 잘 쓰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다. 그의 삶과 죽음을 존중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고(故)를 쓰는 것은 죽은 자를 예우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


매릴린 먼로(1926-1962) 또한 유관순보다 늦게 태어나고 유관순보다 늦게 돌아갔지만 고(故) 매릴린 먼로라고 하는 것이 약간 어색하다. 이 사람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고(故)를 붙여주는 경향이 생겨나는 듯 하지만, 아직도 작고한 외국인은 그냥 이름만 부르는 일이 많다. 고(故)를 붙이는 것은 동북 아시아의 관습이지 유럽이나 미국의 컬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故)를 쓰기 위해선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잣대가 적용된다. 첫째는 죽은 연도, 둘째는 죽을 때의 나이, 셋째는 죽은 사람에 대한 '일정 정도의 존경', 그리고 이 땅의 사람. 아무나에게 고(故)를 붙이는 듯 하지만 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면 죽은 지 몇 년이 되면 고(故)를 뗄까. 이것은 좀 애매모호하다. 김소월을 고(故) 김소월시인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김소월시인이라고 해야할지, 정해진 규칙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힌트가 한자 고(故) 속에 들어있다. 고(故)는 옛날(古)과 이어진다, 지속한다는 의미의 등글월문(?(=?)으로 되어 있다. 지금과 끊어진 옛날은 역사 속으로 편입된 시간이다. 역사 속에 편입된 인물은 고(故)를 쓰지 않고, 아직도 현실적인 영향의 범주내에 있는 사람은 고(故)를 쓴다. 박정희 전대통령(1917-1979)은 꼬박꼬박 고(故) 박정희씨라고 쓰지만, 그보다 아홉살 아래인 박인환 시인(1926-1956)에게는 고(故) 박인환씨라고 안해도 덜 부담스러운 것은, 현재로 이어지는 영향력이 작동한 것이라 봐도 될 것이다.


죽은 사람이 고(故)를 떼는 것은 죽고난 뒤 대략 3세대(90년)가 흐르고 난 뒤라고 한다. 그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질 때 쯤부터 고(故)를 떼고 이름만으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인(故人)이 고인(古人)이 되는 시점이다. 아마도 평생 무명으로 살다간 사람이 거의 완전하게 잊혀지는 것도 그 비슷한 시기이다. 현실적 인물이 역사적 인물로 옮겨앉을 때, 고(故)를 쓰지 않게 된다. 생각해본다. 90년 뒤에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존재일까, 아니면 고(故)자를 떼고 가끔 책이나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일까.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