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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故이순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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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故이순신?(2) 낱말의 습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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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죽은 사람이고, 소수의 산 사람들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었다. 아는 사람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산 사람 이름은 곧 동나지만 죽은 사람 이름은 끝없이 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 얘기다.

최진실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린 고(故) 최진실씨라고 말한다. 정주영회장을 말할 때, 고(故) 정주영씨라고 말한다. 고(故)는 이름만 쓰지 않고 반드시 뒤에 존칭이나 예칭(禮稱)의 표현을 붙인다. 왜 그럴까. 망자(亡者)는 모든 산 사람의 선배이니, 쉽게 불러서는 안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같은 망자인데도 좀 오래되어 보이는 사람에겐 고(故) 자를 안붙인다. 고(故) 이태백씨, 고(故) 세종대왕, 고(故) 이순신씨, 고(故) 유관순씨. 좀 웃긴다. 그런데 이승만대통령에는 고(故) 이승만씨라고 쓴다. 유관순보다 이승만이 27년 연상이다. 그런데도 고(故)자를 붙일 수 있는 건, 이승만이다. 이건 왜 그런가. 죽은 자의 끗발은 죽는 날부터 발생하기 때문인가. 과연, 유관순은 이승만보다 45년전에 죽었다. 유관순은 겨우 18년 살았고 이승만은 90년 살았다.

그렇다면 고(故)는 죽은 때를 따져서 붙이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유관순은 1920년에 돌아갔지만 안중근의사는 1910년에 돌아갔다. 유관순에게는 고(故) 유관순누나라고 말하지 않지만, 안중근에게는 고(故) 안중근의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건 왤까? 살았던 나이가 주는 무게가 작동한 까닭일 것이다. 안중근은 돌아갔을 때 31세였고 유관순은 18세였다. 어린 친구에게는 고(故)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작용한 것이다. 7살바기 최샛별이 죽었는데 고(故) 최샛별이라고 잘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의 김일성(1912-1994)은 유관순보다 늦게 태어나고 유관순보다 늦게 돌아갔지만 고(故) 김일성씨라고 잘 쓰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다. 그의 삶과 죽음을 존중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고(故)를 쓰는 것은 죽은 자를 예우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


매릴린 먼로(1926-1962) 또한 유관순보다 늦게 태어나고 유관순보다 늦게 돌아갔지만 고(故) 매릴린 먼로라고 하는 것이 약간 어색하다. 이 사람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고(故)를 붙여주는 경향이 생겨나는 듯 하지만, 아직도 작고한 외국인은 그냥 이름만 부르는 일이 많다. 고(故)를 붙이는 것은 동북 아시아의 관습이지 유럽이나 미국의 컬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故)를 쓰기 위해선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잣대가 적용된다. 첫째는 죽은 연도, 둘째는 죽을 때의 나이, 셋째는 죽은 사람에 대한 '일정 정도의 존경', 그리고 이 땅의 사람. 아무나에게 고(故)를 붙이는 듯 하지만 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면 죽은 지 몇 년이 되면 고(故)를 뗄까. 이것은 좀 애매모호하다. 김소월을 고(故) 김소월시인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김소월시인이라고 해야할지, 정해진 규칙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힌트가 한자 고(故) 속에 들어있다. 고(故)는 옛날(古)과 이어진다, 지속한다는 의미의 등글월문(?(=?)으로 되어 있다. 지금과 끊어진 옛날은 역사 속으로 편입된 시간이다. 역사 속에 편입된 인물은 고(故)를 쓰지 않고, 아직도 현실적인 영향의 범주내에 있는 사람은 고(故)를 쓴다. 박정희 전대통령(1917-1979)은 꼬박꼬박 고(故) 박정희씨라고 쓰지만, 그보다 아홉살 아래인 박인환 시인(1926-1956)에게는 고(故) 박인환씨라고 안해도 덜 부담스러운 것은, 현재로 이어지는 영향력이 작동한 것이라 봐도 될 것이다.


죽은 사람이 고(故)를 떼는 것은 죽고난 뒤 대략 3세대(90년)가 흐르고 난 뒤라고 한다. 그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질 때 쯤부터 고(故)를 떼고 이름만으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인(故人)이 고인(古人)이 되는 시점이다. 아마도 평생 무명으로 살다간 사람이 거의 완전하게 잊혀지는 것도 그 비슷한 시기이다. 현실적 인물이 역사적 인물로 옮겨앉을 때, 고(故)를 쓰지 않게 된다. 생각해본다. 90년 뒤에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존재일까, 아니면 고(故)자를 떼고 가끔 책이나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일까.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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