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순조의 40세 생일을 기념한 잔치에서 왕세자의 상은 온통 꽃으로 뒤덮혀 있다. 종이로 만든 연꽃인 '수파련(水波蓮)'을 비롯, 계절 별로 돋보이는 각양각색 절화(節花) 11가지가 화려하게 피어 올랐다. 왕실잔치의 잔칫상은 각종 비단으로 만든 상화(床花, 음식에 꽂는 장식 꽃)를 놓는데, 참석한 인물들의 신분이나 관등에 따라 다르게 준비된다.
왕의 연희 장소로 옮겨보자. 궁중의례 시 임금이 자리한 자리의 정면 좌우 기둥 앞. 역시나 장식 꽃이 마련돼 이번엔 항아리에 꽂혀 있다. 진분홍, 백색의 꽃들이 담긴 항아리는 주칠을 한 나무 받침대 위에 놓인다.
궁중 잔칫날 연희 공간을 수놓았던 가짜 장식 꽃. 조선시대 궁중 채화(採花)들을 재현해 모아 놓은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인 황수로 동국대 종신석좌교수(여·78)가 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들이다. 황 교수는 1829년(순조 29) 순조의 즉위 30년과 40세 생신을 기념해 창경궁에서 성대하게 열린 잔치에서 돋보인 궁중채화를 재현해냈다.
궁중채화는 조선시대부터 비단, 모시, 밀랍 등 갖가지 재료를 정성스럽게 다듬고 염색해 ▲모란, 매화 ▲벌, 나비, 새 등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꽃, 곤충, 동물들을 실사 그대로 처럼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왕실의 품위를 높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장식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선 19세기부터 활동해온 프랑스의 르제롱(Legeron) 가문의 브뤼노 르제롱(Bruno Legeron) 장인이 제작한 명품 꽃장식도 확인할 수 있다. 브뤼노 가는 프랑스 파리의 브롱델 30번지에서 시작된 아뜰리에 르제롱에서 4대째 비단꽃을 만들어 온 장식 가문이다. 선대로부터 전해진 전통도구들과 비법들을 사용해 비단꽃이 제작되고 있다. 비단과 깃털을 사용한 패션소품, 드레스, 모자, 장식물 등 고급패션에 장식되는 모든 종류의 꽃을 만든다. 디올, 꾸레쥬, 응가로 등 전 세계 패션브랜드들의 오뜨꾸뛰르와 프레타포르테 등 패션쇼에서 르제롱의 꽃이 애용되고 있다.
작품들은 서울 경복궁역 국립고궁박물관에서 8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열리는 '아름다운 궁중채화'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