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故人)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다. 해석은 넘쳐나지만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다. 스티브 잡스.
사연은 이렇다. 애플과 구글은 상대 회사 직원의 스카우트 금지 협약을 체결했는데 2007년 구글이 이를 어기고 애플 직원 채용을 시도했다. 잡스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고, 슈미트 회장은 인사팀에 진상 파악을 지시해 인사팀 직원의 실수로 드러나자 곧바로 해고했다.
슈미트 회장은 해고 사실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사과 메일을 잡스에게 보냈다. 잡스도 슈미트 회장에게 답장 메일을 띄웠는데 여기에 문제의 이모티콘 ':)'(웃는 표정)이 등장한다(잡스와 슈미트가 주고받은 메일은 최근 공개됐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해고에 대한 잡스의 반응이 너무 냉혹하다고 비난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슈미트의 빠르고 정중한 대응에 '감사의 뜻'으로 썼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잡스를 다시 불러낸 이모티콘(Emotion(감정)과 Icon(아이콘)의 결합어)은 출생일시가 1982년 9월19일 오전 11시44분이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스콧 팔맨 교수가 온라인 게시판에서 ':-)'를 처음 사용했다. 당시 그는 온라인 유머의 한계에 대해 토론하던 중이었다. 팔맨 교수는 훗날 "농담 표시로 :-)를 사용했다"고 회고했다.
농담처럼 탄생한 이모티콘은 농담처럼 빠르게 불붙어 이메일, 채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인터넷을 접수했다. 예컨대 이렇다. '너, 잘났다'는 냉소, '너, 잘났다^.^'는 농담. '이거 처리해'는 명령, '이거 처리해*^^*'는 부탁. '미안해'는 말로만, '미안해T_T'는 가슴으로.
얼굴 표정을 본뜬 이모티콘은 디지털시대의 상형문자(象形文字)이지만 한국과 미국이 약간 다르다(일본은 우리와 비슷하다).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데 우리는 눈을, 미국인은 입을 주시하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 유키 박사의 연구 결과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일본인(한국인도 마찬가지)은 웃는 얼굴을 표현할 때 '^-^'를, 미국인은 ': )'를 사용한다. 슬픈 얼굴을 나타낼 때는 일본인은 'T_T', 미국인은 ':('로 표현한다. 전자는 눈을, 후자는 입을 강조한 결과다.
이모티콘은 감정이 없는 문자에 희로애락을 입히는 마법이다. 무미건조한 대화에 36.5도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적재적소에서는 천냥 빚도 갚는다. 잡스가 ':)'를 쓴 것도 그래서라고, 확인할 수 없는 확신을 가져본다. 잡스, 그렇지?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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