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낙인’은 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이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는 가축이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하고자 동물의 몸에 낙인을 찍었다.
과거에는 노예, 포로의 얼굴이나 몸에 낙인을 찍기도 했다. 아프리카 노예들은 흥정이 끝나고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지기 전에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생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더 큰 아픔은 한 번 찍힌 낙인은 평생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낙인은 ‘야만의 시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현대 사회에도 다양한 유형의 낙인이 존재한다. 타인을 향해 낙인의 칼날을 마구 휘두른다.
“A그룹 둘째 아들이 연예인 B씨와 불륜 사이래. 숨겨둔 아이도 있다는데.” “정치인 C씨가 검찰에 기소됐는데 ‘검은돈’을 어마어마하게 먹었다더라.”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에게 들었다는 출처까지 덧붙이면 소문은 이미 사실이 된다. 당사자는 속을 끓일 수밖에 없다. 대놓고 해명하기도 그렇고 하지 않으면 더욱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대중이 당사자 해명을 찬찬히 들어보고 생각을 정립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심심풀이 얘깃거리로 바라보기에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낙인은 현실이 된다. 일반인 누구나 낙인의 칼자루를 지녔다. 무심코 전한 소문의 내용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댓글도 누군가에게는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낙인은 이미 사회적 문제이다.
심리학 용어 가운데 ‘낙인효과(Stigma Effect)’라는 게 있다. 부정적 평가를 받은 사람은 점점 그렇게 변해간다는 의미다. 지금은 심리학을 넘어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평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낙인은 엄중한 의미를 갖는다.
직업상 상대를 향해 낙인의 칼날을 휘둘러야 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의 죄를 묻고 처벌수위를 결정하는 판·검사들이다. 누군가를 검찰에 불러 포토라인에 세우는 행위만으로도 당사자에게 낙인을 안겨줄 수 있다.
누군가를 기소하고 구속하는 행위만으로도 그는 ‘범죄자’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당사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원의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법관은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사건을 얼마나 신중하게 처리할까. 눈앞에 놓인 종이 몇 장의 내용을 맹신해 당사자의 절절한 사연을 흘려들은 일은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증거보다 말에 무게를 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판결문에 담아내지 못하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찰하는 법관들도 많이 있다. 한 번의 판단 실수는 누군가의 삶을 파탄 내는 ‘낙인’으로 이어지기에 스트레스도 극심할 수밖에 없다. 명예와 권위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법관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힘든 직업인 셈이다.
법조인들도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본인에게 주어진 칼자루의 무게를 실감한다고 한다. 누군가를 응징하고 심판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생각했던 시절과는 달리 긴 호흡으로 사안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다.
법조인의 경륜은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넓고 깊은 눈은 단지 나이가 든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법복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이들만이 낙인의 칼자루가 얼마나 위험하고 엄중한 권한인지 깨닫는 법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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