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카드사 고객정보 1억건 유출, 금융당국 간부가 연루된 1조8000억원 사기대출, 국민은행 도쿄지점 5000억원대 불법대출…'
요즘 금융권은 자고나면 새로운 사건·사고가 터져 나온다. 그것도 은행 직원의 단순 횡령 사건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의 메가톤급들로, 연일 신문 1면을 도배하고 있다. 전 국민을 분노케 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채 진정되기도 전에 금융당국 간부가 연루된 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 사기 사건이 적발됐다. 여기에 지난해 발생한 국민은행 도쿄지점 불법대출은 당국의 조사결과 불법대출 규모가 적발 초기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번 사건들은 단시간에 일어난 게 아니다. 국민은행 도쿄지점 사건은 잇따라 근무한 2명의 현지 지점장이 2007년부터 7년 동안 사고를 쳤다. 불법대출 액수는 411억엔, 우리 돈으로 5448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사건이 곪아터질 때까지 해당 금융회사는 까맣게 몰랐다.
KT ENS 대출사기 또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지속됐다. 위조된 대출 서류로 1조8000억원의 돈이 오가는 데도 하나·국민·농협은행 등 피해 은행 16곳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눈치도 채지 못했다. 특히 이들 은행들은 KT의 자회사와 관련됐다는 점만 믿고 담보로 제공된 서류의 진위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돈을 내줬다. 허술한 여신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 금융권의 현 주소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의 한 간부는 사기 대출의 핵심 용의자에게 금감원 조사 내용을 알려주고 도피까지 도왔다. 도덕적 해이 또한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다.
또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이미 2010년 1000만건의 정보가 새나갔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그러나 최근 검찰의 2차 발표가 나올 때까지 해당 카드사는 물론 금융당국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번 사건들은 대한민국의 금융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까지 내부에서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 대기업 도장만 있으면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는 허술한 여신관리 시스템, 금융범죄를 감시 감독해야 할 금감원 간부가 범죄를 공모할 정도로 추락한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금융사고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고, 언제든 리스크가 터져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숨겨진 비리를 찾고 대형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하루빨리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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