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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뷰]크림 사태는 통일의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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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일로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크림반도에선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국가 사이의 무력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23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각하고 친 서방노선의 야당이 수도 키예프를 장악했을 때만해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곧 일단락될 것 같았다.

그런데 3월초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전격 개입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러시아는 사실상 크림반도를 장악한 상태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 자지공화국도 이에 맞춰 러시아 연방 편입을 결의한 상태다. 16일로 예정된 찬반투표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주민투표 이후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요구하며 알박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토 분단과 국제분쟁의 수렁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운명도 점점 우크라이나 국민의 손에서 떠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충돌과 그들의 타협 결과로 우크라이나의 내일과 지도가 새롭게 그려질 것이라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우크라이나 사태의 최근 전개과정을 지켜보면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불길한 기시감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흑해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때문에 수백년동안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전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주변 열강의 복잡한 파워게임은 이번에 다시 실체를 보이며 우크라이나를 옥죄고 있는 형국이다.


안타깝게도 장차 한반도의 통일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국제정치의 밑그림도 이와 유사한 구조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반도에서 분단체제의 붕괴를 촉발시킬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러시아의 크림반도 전격 개입과 같은 돌발상황이 한반도에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특히 1961년 북한과 중국이 체결한 조·중우호 협력상호조약에는 아직 자동개입조항이 남아있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란 주장도 있지만 이의 활용 여부는 결국 중국의 손익계산서에 달려있다. 한반도의 통일 시도와 기회가 언제든 주변 열강의 엇갈린 이해관계로 인해 뒤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분단이란 기존 체제를 부수어야하는 불안감보다는 통일이란 새로운 질서에 대한 긍정과 희망에 방점을 두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후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선 동북아 대박론도 제기했다. “한국의 통일이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게도 대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대통령도 향후 통일 한국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불안한 시선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동북아 대박론은 아직은 수사(修辭)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주변 강국들이 대박론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논리나 근거가 아직 그 단초라도 나온 것이 없다. 흔히 통일 준비를 언급할 때 독일이 자주 인용된다. 당시 서독 정부는 1990년 통일 대업을 이루기 이전에 1986년 동독 국민의 서독 여행 자유화 조치와 1989년 베를린 장벽 해체라는 수순을 차례로 밟았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었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나 콜 총리 등 당시 지도자들은 옛 소련은 물론 역사적으로 독일에 대해 두려움이 강했던 프랑스 영국을 상대로 통일 독일이 유럽 경제와 정세에 기여할 것이란 점을 끈질기게 설득, 동의와 묵인을 이끌어냈다. 이같은 물밑 작업을 통해 독일 분단 체제를 찍어누르던 외부의 압력이 사라지면서 동서독 내부의 장벽해체도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국토 분할 위기로 까지 치닫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 통일 준비에 새로운 자극이자, 과제를 주고 있는 셈이다. 머지 않아 주변 열강들도 “한반도 통일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며 냉철하게 따져 묻게될 것이다. 이 궁금증을 풀어줄 모범 답안지는 주변 열강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제시해야한다.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것 역시 당사자의 몫이다.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과거의 실수와 주변의 불행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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