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0)
이날 이후 퇴계와 두향은 그야말로 깊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지음(知音)이 되었다. 두향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음탕한 것과 사랑하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여전히 어렵사옵니다. 같은 육신의 일이며, 똑같이 욕망지사(慾望之事)인데 그것을 굳이 나누려고 하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닐지요?"
"그건 그렇지 않다네. 내가 서른네 살 때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을 때, 동료들에 이끌려 술자리에 자주 참석했다네. 아랫사람을 벌 준다며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여럿이 떠들고 마셨지. 선배들은 나중에 급제한 사람을 괴롭혀 선후의 차례를 보이려 했지. 또 교만한 기운을 꺾고자 하는 뜻도 있었다네. 신참이 처음 참석하는 술자리를 허참이라고 하고 오십일이 지난 뒤에 베푸는 것을 면신이라고 했지. 그 중간중간엔 중일연이라고 해서 또 술자릴 가졌지. 사이사이에는 기생을 끼고 앉았고 상관장은 기생을 둘 끼고 앉는데 이걸 좌우보처라 하지. 아래로부터 위로 차례로 잔에 술을 부어 돌리고 순서대로 일어나 춤을 추되 기생이 따라 추지 않으면 벌주를 먹였지. 새벽이 되어 상관장이 일어서면 그때 모두가 일어나 박수하고 몸을 흔들며 춤추며 한림별곡을 부르지. 이렇게 놀다가 날이 새고 나서야 헤어진다네."
퇴계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다시 이었다.
"그땐 그러려니 하고 이 일을 따라했는데, 지나고 돌아보니 이 일이 몹시 부끄럽더군. 어지러이 놀고 시끄럽게 날뛰는 일이야 말로 사람을 마구 움직이게 하며 분별이 사라지도록 한다는 걸 알게 되었네. 기생을 끼고 호탕한 입담을 늘어놓으며 좌중과 함께 흥청거리는 일이 나는 음탕함의 하나라고 생각해왔네. 그것은 친교도 소통도 아닌, 퇴락적인 유희일 뿐이지. 흥이 절정에 오르면 사람들은 한림별곡을 불렀지. 내가 듣기에 그 한림별곡은 천하에 더없이 교만하고 추잡한 벼슬아치들의 노래였네. 그 또한 고려의 가요였지만, 쌍화점이나 이상곡보다 훨씬 퇴폐적이었고 방탕한 일탈이었네."
퇴계는 전에 없이 강한 태도로 한림별곡을 비판한 뒤 이런 말을 했다. "그 별곡을 듣고나서, 언젠가는 가장 진솔하고 개결한 사대부별곡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였네."(이 생각은 나중에 퇴계의 '도산십이곡'을 이룬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승문원의 그런 유흥이 방탕이지, 남녀가 부부의 예를 갖춰 정성껏 사랑하는 일을 어찌 그런 방탕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부부의 예를 술자리 유흥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방탕이겠지."
"아, 그렇군요. 부부의 예를 갖춘다는 말이 참으로 아름답게 여겨지네요. 만약에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따라죽는 일은 권할 만한 일인가요?"
"음. 어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
"일전에 한 기생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남편이 책을 읽고 있다가 어느 부인에게 장난삼아 물었다 합니다. '책에 열녀가 지아비를 따라죽은 대목이 나오는데, 당신도 이처럼 할 수 있겠소?' 그 말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여자가 지아비를 따라 죽는 일은 불행한 일입니다. 어찌 불행한 일로 서로 다짐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듬해에 남편이 진짜로 세상을 떠났지요. 아내는 이후로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는데 시부모가 걱정을 하며 슬픔이 지나치다고 꾸짖었다 합니다. 여인은 '여자는 지아비를 따라 사는 법이니 이제 하루를 더 살면 그 하루가 욕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시부는 '아름다운 이름이야 남기겠지만 꼭 죽어야할 경우가 아니라면 어찌 남들의 말이 없겠는가?'라고 말렸습니다. 아내는 '지난날 그분께서 제게 물었던 일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감히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마음을 먹은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어찌 남의 말을 두려워하여 구차히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그날 밤 그녀는 몰래 우물에 몸을 던졌지요. 사람들이 발견했을 땐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더군요." <계속>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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