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승훈(26·대한항공)에게 4년 전 밴쿠버의 영광은 없었다. 그래도 이를 악 물었다. 3~6번째 바퀴에서 맨 앞으로 나와 후배들을 이끌었다. 체력 소모가 많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반까지 1초 이내로 따라붙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3개를 딴 네덜란드 선수들을 긴장시켰다. 올림픽신기록(3분37초71)에 3초14 뒤진 3분40초85. 한국의 사상 첫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 메달이자 이번 대회 한국 남자의 첫 메달이다. 부진했던 올림픽의 끝에서 쏘아올린 희망이기도 했다.
17일간 전 세계 지구촌을 달궜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23일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은 목표였던 톱10 진입에 실패했다.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인 71명의 선수가 출전했지만 22일(한국시간) 이승훈, 주형준(23), 김철민(22·이상 한국체대)의 남자 팀추월 은메달을 끝으로 종합순위 13위를 했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14위(금 2, 은 2) 이후 가장 부진했다. 한국은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7위(금 6개, 은 3개, 동 2개),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역대 최고인 5위(금 6개, 은 6개, 동 2개)를 했다. 이번 대회를 2018년 평창 대회의 전초전으로 여겼지만 중국(12위·금 3, 은 4개, 동 2개)에까지 밀렸다. 아시아 국가 1위 자리를 12년 만에 내줬다.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전 종목에 출전한 한국은 이상화(25·서울시청)가 첫 금메달을 땄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연속 우승을 이뤘다. 여자 쇼트트랙의 박승희(22·화성시청)는 여자 3000m 계주와 1000m에서 정상에 올라 한국 선수단에서 유일하게 2관왕을 했다. 500m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해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 1000m 동메달을 챙긴 심석희(17·세화여고)와 함께 한국 선수단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피겨 여왕’ 김연아(24)는 깔끔한 연기에도 판정 논란 속에 은메달을 땄다.
남자 쇼트트랙은 12년 만에 노메달에 머물렀다. 모태범(25·대한항공)과 이승훈도 4년 전 밴쿠버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최재우(20·한국체대)는 한국 모굴 스키선수 최초로 동계올림픽 결선에 올랐다. 윤성빈(20·한국체대)은 한국 썰매 종목 통틀어 역대 최고 성적인 16위를 했고, 여자 컬링은 가장 낮은 세계랭킹(10위)에도 3승 6패로 8위를 했다. 모두 차기 올림픽에서 선전이 기대된다.
그 무대는 강원 평창이다. 폐회식에서 아나톨리 파호모프 소치 시장으로부터 대회기를 인수받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이석래 평창군수에게 다시 대회기를 전달했다. 4년 뒤 평창 올림픽 때까지 평창군청에 보관된다. 1988년 서울 하계대회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개최 나라가 됐다.
2018년 2월 9일 개막해 25일까지 17일간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는 80여개 나라에서 선수와 임원 6천여 명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는 평창, 강릉, 정선에서 열린다. 평창에서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노르딕복합, 바이애슬론,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알파인스키 대회전과 회전, 프리스타일 스키, 스노보드 등이 치러진다. 알파인스키 활강과 슈퍼대회전은 정선이 주 무대다. 스피드와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컬링 등은 강릉에서 열린다. 경기장은 2016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한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 김진선 위원장은 22일 “동계스포츠 저변이 얕은 아시아에서 평창을 동계 스포츠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산 유발 효과 약 20조5000억 원, 고용 창출 23만 명, 외국인 관광객 20만 명 유치 등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평창에 투입되는 예산은 현재 총 11조8000억 원에 이른다. 원주·강릉간 철도사업 등 인프라에 투입되는 비용이 유치 당시 8조8098억 원에서 약 11조 원으로 늘었다.
‘알뜰 올림픽’으로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액인 500억 달러(약54조 원)가 투입된 소치는 벌써부터 우려로 가득하다. CNN머니는 빚잔치로 끝난 올림픽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998년 나가노, 1980년 레이크 플래시드, 1992년 알베르빌 등과 함께 소치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른바 ‘올림픽의 저주’다. 전체 예산의 60%를 초과한 아테네는 대량으로 지은 호텔이 관광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재정위기로 국가 외환위기를 맞았다. 15억 달러의 빚더미를 안은 몬트리올은 30년 만에야 부채를 청산했다. 나가노는 예산을 56% 초과하며 버거워했고, 레이크 플래시드는 뉴욕 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다. 알베르빌도 5700만 달러의 빚을 남겼다. 본격적으로 올림픽을 준비할 평창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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