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10부(부장판사 김인욱)는 교보생명보험이 골드만삭스투자자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 항소심에서 최근 원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2012년 11월13일 정오 골드만삭스 측은 국내업무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골드만 측이 운용하던 프라임퇴직연금 및 법인용 펀드는 철수 발표 3시간 만에 전체 펀드 투자자산 1900억원 가운데 80%인 1500억원에 대해 환매청구가 이뤄졌다. 11개 기관투자자 가운데 투자 규모 30%를 차지하던 교보생명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골드만 측은 투자자 간의 형평성을 해칠 염려가 있다며 환매기일을 미룬 뒤 이튿날 주식 대부분을 처분하고서 환매청구 날짜별로 기준가격을 정해 교보생명에는 581억6000여만원을 지급했다. 교보생명 측은 불필요한 환매연기 결정으로 챙길 몫이 4억7000여만원가량 줄었다며 소송을 냈고, 앞서 1심은 지난해 6월 교보생명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골드만삭스 측의 환매연기결정은 자본시장법상 적법한 것이고, 환매청구에 대응한 업무 처리 또한 펀드를 운용하는 집합투자업자로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앞서 1심 패소로 골드만 측이 교보생명에 가지급한 5억2000여만원도 돌려주도록 했다.
애초부터 이 소송전은 5억 남짓한 돈의 행방을 가리기보다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한 글로벌 금융사와 국내 굴지의 생보사 간 '자존심' 대결로 보는 시각이 높았다.
소송전이 시작될 무렵 이미 골드만 측은 기존 공모펀드를 모두 하나UBS자산운용에 넘겼고, 이후 차례로 영업인가 폐지를 승인받아 투자자문업만 남겨뒀지만 지난해 9월 기준 운용자산은 0원, 향후 추진계획 사업 없이 이사 3명 포함 전체 직원은 9명에 불과하다. 실상 얼개만 남겨둔 채 법정싸움에 대응해 왔고, 소기의 목적은 거둔 셈이다. 골드만 측은 국내시장 철수에도 불구하고 해외펀드 자문 업무를 위해 조직을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철수 발표 전까지 기관투자자에 기대어 오던 골드만 측이 기관투자자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아 승소한 대목도 흥미롭다. 재판부는 "교보생명 측 주장대로 환매대금 기준가격을 정할 경우 기관투자자들이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0.82% 증가한 금액임에 반해, 환매연기 결정이 없었더라면 잔존 투자자들은 보유 자산의 3.82% 상당 손실을 입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환매연기결정이 불필요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소송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운용사의 잘못을 고객사가 책임져야 하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법원 상고를 적극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법원에 따르면 아직 상고장이 제출되지 않았으나 민사재판 상고기간이 2주임을 감안하면 시간적 여유는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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