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아시아 정보통 톰 플레이트와 마하티르와의 인터뷰 대담집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마하티르 모하마드(88) 전 말레이시아 총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981년 말레이시아 제4대 총리로 취임해서 2003년 자진퇴임까지 그가 재임한 22년이라는 시간은 말레이시아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겼다. 마하티르의 재임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는 GDP가 1000달러에서 4000달러로 400% 증가하는 등 이슬람 국가로는 세계 최초로 선진국을 꿈꾸는 초석을 다졌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현대화를 이끈 국부'라는 칭송과 더불어 '경제개발에만 치중한 독재자', '권위주의적 통치로 민주 발전을 막은 총리'라는 비난도 따라다닌다. 한국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수식어는 '말레이시아판 박정희'이다.
신간 '마하티르와의 대화'는 미국 내 아시아 정보통으로 불리는 'LA타임스'의 전 논설실장 톰 플레이트가 마하티르 전 총리를 만나 네 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대담집이다. 그가 유독 마하티르에 관심을 보인 까닭은 "9.11 사태 이후, 이슬람 문제를 둘러싼 마하티르의 영향력과 인지도가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마하티르는 기자회견장에서 그를 단순히 '그저 그런 제3세계 정치인'으로만 알고 있던 서구 기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마하티르는 당시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거침없이 날선 목소리를 냈다. "절대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 그것은 10억명이 넘는 이슬람 전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이며, 이는 결코 당신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분쟁의 범위를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이슬람 전투부대를 공격할 때에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독교 십자군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전체 이슬람 중 절반 이상을 당신들 편으로 만들 수 있다."
마하티르가 주류세력에 반기를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말 아시아를 뒤덮은 외환위기 당시에서도 마하티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유일하게 거부하고 독자적인 자본통제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대신 이슬람 금융 시스템을 고수했다. 이슬람 문화에서 금융 시스템은 공동체 중심적이고 사회적 규범을 기반으로 한다. 예를 들어 은행은 이자로 배를 불려서는 안 되며, 부도덕한 혹은 율법에 반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돈을 빌려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 결과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다른 아시아권에 비해 작지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와 마하티르가 직접 나눈 생생한 대화들을 통해 마하티르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매 질문마다 거침없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골드핑거', '두번 산다' 등 각 장의 제목을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007영화에서 패러디한 것도 마하티르가 행동파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발 452m의 페트로나스 타워를 세우도록 한 것 역시 마하티르였다. 그는 "말레이시아가 앓고 있는 질병이 열등감과 지나친 느긋함"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위한 처방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하고자" 했다.
'독재자'라는 오명에 대해 직접 해명한 부분도 눈여겨볼만 하다. "독재로 일관했다면 그렇게 오래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선거를 다섯 번이나 치렀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가 내가 이끌었던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선택했다.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더라면 22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중략) 더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퇴임이 실수였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됐다."
(마하티르와의 대화 / 톰 플레이트 지음 / 박세연 옮김 / RHK / 1만5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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