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그 별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마음 먹던 밤/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그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하늘을 생각했다/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 듯이 쏟아버린/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도종환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 이걸 어리석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의 첫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라 말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감정에는 태생적으로 격렬한 자기부정이 있다. 사랑은 좋은 것들, 기쁜 것들, 마음에 드는 것들의 집합이 아니라, 좋음과 미움이 골짜기와 봉우리를 이루면서 출렁거리는 '생물'이다. 사랑이 미워지는 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사랑 전부가 본질적으로 계산 없고 깊이 어리석으므로, 다른 꾀와 노하우가 바닥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사랑이란 그 대상이 곧 미워지고, 미워지기 쉽고, 미워질 수 밖에 없는 내면(內面)을 지녔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니므로, 나처럼 되지 않으므로, 사랑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며, 결국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이며, 많이 아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도 아는 게 없었던 그런 존재이다. 사랑할수록, 좋아지고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는, 이걸 왜 하는가. 사랑은 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러나 어김없이 태어나고 마는, 끈질긴 꿈이다. 천국을 힘겹게 진 달팽이처럼, 우린 서럽게도 느릿느릿 기어가며 사랑하며 괴로워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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