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그녀가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에 하림은 갑자기 마음 한쪽이 까닭 없이 허전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하면 우스웠다. 자기가 허전해 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자기도 곧 여기를 떠날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만은 이곳에 남아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풍경 속에 꼭 있어야하는 것이 사라지고 나면 그 풍경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게 된다. 그녀가 없는 저수지는 다시 옛날의 저수지가 아닐 것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근데.... 어디로 갈 생각이예요? ” 하림이 떠오르는 대로 물어보았다.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그녀가 싱겁게 훗, 하고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언젠가 수관 선생이 말해주더군요. 내 팔자에 역마살이 있어 정착해서 살기는 글렀다구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요.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배낭 하나 메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을지 몰라요.” 그녀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나.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약간 의외였다.
“한때는 한비야 같은 사람이 부러웠어요. 배낭 메고 지구를 두 바퀸가 돌았다는 여자 있잖아요.”
“........”
“근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되더라구요. 아버지 옆자리 말이예요. 혼자 남은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하고.... 형제가 없으니 더욱 그랬는지 몰라요. 이젠 그게 오히려 내겐 편하게 여겨지지만.”
“.......”
“아버지가 풀려나시면 둘이서 더 멀리, 아무도 없는 곳, 그런 곳에 가서 살고 싶어요. 큰 기도원이 아니라 작은 오두막 같은 걸 짓구요. 그것도 욕심이더라구요. 암튼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놀러오세요.” 하고 조금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신 다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도 그녀를 따라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참. 한 가지 잊어버린 게 있네요.” 현관으로 향해 가던 그녀가 몸을 돌리고 하림을 향해 말했다.
“<차차차 파라다이스> 실재 주인은 윤재영이란 사람이래요. 이 화실 주인 여자 말이예요. 알고 계셨죠?” 하고 말했다.
“예.....?”
“송사장이란 사람은 겉만 번질했지 빈털터리래요. 사업하다가 빚만 잔뜩 남기고 감옥까지 갔다 왔던 사람이라 무일푼이랍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 윤여사라는 분, 미안해요, 장선생님이랑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지만, 그 여자가 뒤에서 모두 조종하고 있었던 거래요.” 말을 마친 남경희는 다시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나갔다.
“.......” 현관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환한 햇살이 눈에 부셨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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