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에 대한 비준 절차를 국민과 국회에 알리지 않고 슬그머니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 단계로 정부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의결한 사실은 일주일이 지난 12일에야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두 번째 단계로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정안을 재가한 사실도 열하루가 지난 어제 언론 보도로 뒤늦게 드러났다. 국회는 정부가 알려주지 않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 협정 개정안은 산업적 이해관계도 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철도시장 개방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야당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예의주시해온 사안이다. 그런 만큼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한 비준 절차를 비공개적으로 진행해온 것이다. 비준 절차 중 아직 남아있는 단계는 수락서를 WTO에 기탁하는 것 하나다. 정부는 다음달 3일로 예정된 WTO 9차 각료회의 개회를 전후해 수락서를 기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밀실비준'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떳떳하다는 태도다. 국제조약과 통상협정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규정한 헌법과 통상절차법 위반이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제처가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했다'고 말했다. 사회 일각에서 반대하는 고속철도(KTX) 민영화를 밀어붙일 심산으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그럴 의도가 없으며 그와 직접 연결되는 조항은 들어있지 않다'고 대응한다. 이 협정은 오히려 국내 철도산업의 해외진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학교급식용 국산 친환경 농산물 구매와 국내 중소기업 우대에 관한 예외조항을 지켜냈다면서 협상 성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비밀스럽게 비준 절차를 진행해왔는지 모르겠다.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더욱 당당하게 국회와 국민에게 알려가며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정부 주장과 달리 국회가 스스로 비준동의 대상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정부는 국회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헌법과 통상절차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자세다. 사회갈등을 줄이기 위해 국회에서의 논의를 활용할 수도 있다. '대외협상 못지않게 대내협상도 중요하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갈등의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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